[시론] 남북회담 1년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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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 정상회담 이후 1년 동안 남북관계는 이렇다 할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 평가다. 이렇게 된 원인의 일부는 북한에 있다.

예컨대 북한선박의 북방한계선(NLL)침범은 남북 공동선언의 화해와 협력정신에 반(反)하는 것이다. 그러나 DJ정부도 정상회담을 실질적인 남북관계 발전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첫째, 이념의 융합에 실패했다. 정치지도자가 이념요소가 크게 자리잡은 이슈를 해결하려면 국가발전 목표를 향해 경쟁적 이념세력들의 통합적 힘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 이후 스페인의 다양한 이념을 대표하는 정치엘리트들이 협력해 이룬 눈부신 민주화와 경제발전, 보수세력을 끌어안은 영국 노동당의 최근 재집권 성공 등은 이런 좋은 예들에 속한다. 정치사상가들이 현대 이데올로기는 중도적 실용주의만 남았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과 영국 등 서방선진국들에서 좌우이념은 퓨전현상을 보이고 있다.

***진보와 보수세력 분열 심화

우리 이념세력들은 동족상잔의 6.25 비극, 반세기가 넘는 분단, 너무 현저한 남북 경제력 격차 등 때문에 대북정책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게 돼있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 여야의 공감대가 극대화한 국민합의의 대북 정책형성을 위한 깊은 사려와 인내가 요구됐다.

이런 정책을 통해 얻어진 것은 작은 것이라도 의미와 수명을 갖게 돼 정상회담 1주년에 대한 국민의 평가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DJ정부의 대북정책은 진보와 보수의 분열을 심화시켜 '저것과 이것' 이 아니라 '저것 대신 이것' 이라는 제로섬 결과를 낳았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야당 지도자와 보수언론까지 공격하게 되면서 이 사회의 이념적 대립은 깊어졌고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취약해졌다.

***대북원칙은 분명하게 해야

둘째, 내치가 잘못됐다. 경제악화와 의료개혁 부작용 등의 실정으로 국민들 대다수가 남북문제에 냉담해졌다. 내치에 문제가 있을 때 대외정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특히 경제악화로 남북문제 해결의 핵심요소가 약화됐다. 오늘날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남한의 4%, 개인소득도 7백달러 정도로 남한의 8%에 불과하다. 남북경제는 지금 상호 보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투자해야 할 단계에 있다.

대북 경제지원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우리도 어려운데" 라는 반응이 나오는 한 지원은 불가능해진다.

셋째, 정부는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의 수립과 적용에 실패했다. 대북 경제지원과 협력, 국가보안법,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최근 북한선박들의 영해침범 등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확고한 원칙을 결여하고 있어 국민들은 불안하다.

경제지원.협력은 우리의 능력에 맞춰 투명하게 결정하고, 국가보안법은 존폐.개정 전에는 법치주의에 따라 기능케 하며, 金위원장의 답방은 조급하게 촉구하기보다는 북한의 자주적 결정사항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북한의 NLL침범에 '지혜로운 대처' 란 막연한 개념이다. 안보위협 대응원칙에 따라 분명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넷째, 미국의 공화당 정부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 일부 국민들은 반미감정을 표출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미국과의 안보 및 경제협력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부시정부의 출범 전후를 막론하고 미국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예컨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미 직전에 나온 한.러 공동성명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의 보존.강화 관련조항은 미국에 대한 대비가 허술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런 일들은 미국과의 관계악화를 바라지 않는 국민들의 비판에 부닥쳐 DJ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는 더욱 감소했다. 반성은 미래를 위한 대비다. 좌우를 포용하는 온건세력을 이 사회의 구심점으로 발전시키며 내치의 질 향상, 분명한 원칙, 우방과의 관계강화에 충실한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안영섭 명지대 교수 ·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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