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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10대산업 키우자] 11. 노키아 목숨 건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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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핀란드는 인구가 5백만명 정도인 작은 나라지만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국으로 꼽힌다. 바로 노키아가 있기 때문이다. 숲과 호수만이 알려졌던 핀란드를 '강소국(强小國)' 으로 이끌고 있는 노키아의 경쟁력 실체를 현지 취재를 통해 진단한다.

단조로운 북유럽풍 옛날 건물이 대부분인 항구도시 헬싱키에서 전면이 유리로 된 노키아의 초현대식 본사 건물은 단연 돋보인다. 핀란드 수출의 24%, 국내총생산(GDP)의 30.3%, 헬싱키 증권시장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하는 노키아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노키아(http://www.nokia.com)는 1865년 제지회사로 출발했으나 1990년대 초반 이동통신 전문업체로 과감히 탈바꿈했다. 지금은 전세계 휴대폰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정보통신 업계의 거인이다.

◇ 현명한 선택과 과감한 집중〓제지에서부터 고무.화학.전선.기계.가전, 그리고 컴퓨터까지 '잡화점식' 경영을 하던 노키아에 80년대 말 위기가 닥쳐왔다. 방만한 경영으로 수익이 급감한 데다 핀란드의 금융불안과 소련의 붕괴가 겹쳤다.

이 위기에서 회사를 구한 사람은 92년 취임한 요르마 올릴라 회장. 그는 취임 직후 과감한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당시 회사 매출의 20%도 안되던 이동통신 사업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매각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들의 반발도 없지 않았다.

본사의 연구개발 인력들이 60년대 말부터 디지털 통신기술을 축적한 만큼 세계적 기업들과 겨뤄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올릴라 회장의 결정에 밑거름이 됐다.

운도 따랐다. 노키아측은 92년 이동통신사업을 시작하며 2000년께 휴대폰 전세계 수요량을 5만대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4억대 이상이 팔렸다. 또 80년대 초 시작한 GSM(유럽방식)기술이 디지털 이동통신의 세계표준이 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 직원 셋 중 하나는 연구 인력〓노키아가 기술력을 높이는 데 쏟아붓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체 직원 6만명 중 32%인 1만9천여명이 연구개발(R&D)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본사와 미국.영국 등 15개국에 55개 연구개발센터를 두고 있다. 노키아는 이들 지역의 우수인력을 직접 채용, 다국적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기술 공동개발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도 노키아의 장점이다. 노키아는 60년대 헬싱키 대학과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했다. 그 뒤 핵심.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면 대학이나 연구소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제휴했다. 현재 노키아 주도로 유럽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동개발 프로젝트만 1백개가 넘고, 자체 보유한 특허는 지난 99년에 이미 1천개를 넘었다.

마크 스콰이어 개발 담당 매니저는 "신제품을 내놓을 때 이미 우리는 앞으로 내놓을 7~8개의 새로운 제품을 염두에 두고 있다" 며 "변화는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고, 10년을 내다봐야 경쟁사들을 약간 앞설 수 있다고 본다" 고 말했다.

◇ 마케팅과 브랜드의 힘〓올릴라 회장은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브랜드다. 강한 브랜드는 신뢰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나오더라도 이미 사용하던 브랜드의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 강조한다. 그만큼 노키아가 브랜드 관리에 쏟는 노력은 대단하다.

노키아의 독특한 마케팅 전략은 '고객 차별화' 다. 소비자를 ▶사업가▶기술애호가▶유행추종자 등으로 나눠 각각 기능.디자인.가격대를 달리함으로써 고객이 가장 익숙해하는 이미지를 심는다.

브랜드 관리에는 마케팅.연구개발 부서가 따로 없다. 노키아에서 마케팅 부서와 연구개발.제조.물류 담당부서는 하나로 움직인다. 50여개국에 퍼져 있는 마케팅 조직은 소비자 기호 및 시장을 수시로 파악하고, 이 정보를 항상 다른 부서와 공유한다.

팩스.e-메일 기능이 있는 모델(96년.9000 커뮤니케이터), 제품 껍데기(커버) 디자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모델(98년.5100 시리즈),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모델(99년.7110 시리즈) 등 노키아가 세계 최초로 내놓으며 큰 히트를 친 제품은 모두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노키아의 미래는 가전.인터넷.이동통신이 통합되는 차세대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도 선두를 차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마티 알라후타 이동통신단말기 사업부 사장은 "지금까지 휴대폰 시장은 유럽기업이 장악하고 가전은 일본기업, 인터넷은 미국기업이 장악했다" 며 "이제 문제는 누가 통합된 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느냐는 것" 이라고 말했다.

헬싱키=서익재 기자

도움=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지금가지 실린 글>

①시리즈를 시작하며〓5월 14일자 5면

②경제의 허리 부품.소재산업〓5월 15일자 5면

③日 무라타제작소의 선택과 집중〓5월 17일자 9면

④전자상거래가 미래시장 좌우〓5월 22일자 8면

⑤이베이의 생존 경영〓5월 24일자 9면

⑥자동차〓5월 29일자 10면

⑦혁신으로 거듭나는 GM〓5월 31일자 8면

⑧섬유산업〓6월 5일자 8면

⑨베네통의 발빠른 마케팅〓6월 7일자 8면

⑩기로에 선 IT산업〓6월 11일자 8면

◇ 다음 호에서는 10대 업종 가운데 여섯번째로 반도체 산업을 다룹니다. 국내 반도체 실태와 과제, 반도체 업계 최강자인 미국 인텔사 벤치마킹을 두차례로 나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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