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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10시간] 차승원 "내 갈길은 오직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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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영화배우 차승원(31)은 현재 '출산 중' 이다. 그의 표현 그대로다. 코믹 액션극 '신라의 달밤' 개봉일인 23일을 앞두고 산고가 대단하다는 것. 감독도 아니면서 과장이 심하다고 했더니 "사실이다" 라며 펄쩍 뛴다.

"영화를 찍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촬영 전후가 가장 힘겹다. 특히 촬영이 끝나면 너무 괴롭다. 과연 어떤 자식이 태어날지…. " 그만큼 집착이 크다는 뜻이다.

1백88㎝, 81㎏의 당당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가 작아진다. 이번이 일곱번째 작품이지만 시사회 때마다 극장 밖에서 서성거렸던 그다. 너무 긴장하는 탓에 관객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대신 극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눈빛으로 성패 여부를 눈치챈다고 한다.

초 등학교 6학년생 아들을 둔 차승원은 일찍 부모가 된 배우답게 영화를 자녀에 비유했다.

"자식 자랑하기 힘들잖아요. 못났어도, 잘났어도 그냥 자식일뿐이죠. 이번에도 대놓고 잘했다고 말하기 어렵고…. "

약간 굵고 나직하게 깔리는 어조에서 솔직함이 묻어난다. 이목구비 또렷하고, 체형 좋은 모델 출신의 배우라는 '짐 아닌 짐' 을 짊어지고 온 까닭일까. 연기자의 자세.각오.집념을 강조한다.

"가수를 빼고 안해본 연예활동이 없죠. 그리고 선택한 길이 배우입니다.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말입니다. 저에겐 배우가 그래요. "

사실 차승원이 영화배우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던 작품은 지난해 말의 '리베라 메' 다. 그는 겉으론 천사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에 대한 앙갚음으로 연쇄방화를 저지르는 복합적 성격을 매끈하게 소화했다.

2000년 상반기는 '박하사탕' 의 설경구, 하반기는 '리베라 메' 의 차승원이란 말도 돌았다.

'신라의 달밤' 은 차승원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코미디다. 고교 시절 최고의 주먹이 개과천선해 체육교사가 된 최규동역을 맡았다. 평소엔 껄렁껄렁하지만 학생들의 탈선은 일순도 참지 못하는 인물이다. 전교 1등의 모범생이었 으나 나중에 조직폭력단의 1급 참모로 변신하는 상대역 박영준은 이성재가 연기했다.

차승원은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를 끌어가는 중심에 섰다. 불의에 발끈하는 의협파이지만 라면집 주인인 민주란(김혜수)을 놓고 이성재와 양보할 수 없는 승부를 벌일 땐 어쩐지 자신이 없어지는 정겨운 캐릭터다.

'리베라 메'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허허실실한 웃음과 시원한 액션으로 배우 차승원의 입지를 한단계 올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차승원을 처음 보았을 때는 1999년 정월 KBS 미니시리즈 '천사의 키스' 녹화장에서였다. 그가 탤런트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짧은 세월이지만 그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그땐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하루에 프로그램 여섯개에 출연할 정도로 분주했지요. 요즘은 당시보다 돈은 못벌지만 영화 하나에 전념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

차승원에게 지난 2년은 '가지치기' 기간이었다. TV.모델활동 등을 접고 스크린에 열정을 쏟았다. 모델 시절부터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 영화가 천직이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고 한다.

"99년말 개봉한 '세기말' 이 전기(轉機)가 됐습니다. 혼신을 다해 연기에 몰입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죠. " 그는 '세기말' 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지식인(대학강사)의 위선을 표현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중간고사 보는 심정입니다. 이번에 20등 했으면 기말고사 땐 18등 해야지 하는 각오랄까요. "

"왜 1등이 아니냐" 고 하자 "아직 시간이 많은데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 고 대답했다. 그는 '신라의 달밤' 에서 최규동이 입었던 운동복을 직접 디자인하고, 신발도 고르고, 운동기구도 점검하는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 쓰는 치밀함을 보였다.

"당분간 영화에 전념할 겁니다. TV 드라마는 이제 겁이 나요. 한 인물을 충분히 숙성시켜서 그의 특성을 뽑아내는 데 드라마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해요. "

어떤 배역을 맡든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며 능수능란하게 변신하는 할리우드 배우 숀 펜이 현재 그가 지향하는 배우상이다.

글=박정호.사진=오종택 기자

*** '신라의 달밤' 은…

1999년 전국 관객 2백56만명을 동원한 화제작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 감독)의 제작진이 다시 모인 '신라의 달밤' 은 여러 모로 전작과 닮았다. 주유소와 경주라는 제한된 공간, 자주 등장하는 집단 격투신, 상황.대사 등이 빚어내는 코믹한 장면 등이 그렇다.

하지만 전작보다 규모가 더욱 커졌고, 등장인물의 갈등.대립 묘사도 섬세해졌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 불고 있는 복고풍 분위기도 눈에 띈다. 천년의 고도인 경주를 배경으로 10년만에 다시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이 천신만고 끝에 우정을 확인하는 과정이 향수를 자극한다.

전국 관객 8백만명에 도전하고 있는 영화 '친구' 가 서로 운명이 엇갈리는 죽마고우의 비극을 힘있는 드라마로 소화했다면 '신라의…' 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던 두 명의 친구가 결국 우정이란 공통분모에서 재회하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냈다.

차승원.이성재.김혜수가 연출하는 사랑 쟁탈전도 양념거리 이상이다.

패싸움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 잡다한 느낌도 주지만 주연 세 명을 떠받쳐주는 조연들(주먹세계를 꿈꾸는 고교생, 이성재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노형사 등)의 연기가 빛나 작품의 긴장감이 유지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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