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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북엑스포 르포] e-북·종이책 "함께 살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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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출판업계의 슈퍼볼' 로도 불리는 북 엑스포 아메리카(BEA)는 미국 최대의 국제 도서견본 시장이다. 지난해 이곳에선 전자책(e-북)열풍이 불었다. e-북의 거센 파고는 국내에도 몰아쳐 'e-북이 종이책을 대체할 것인가' 라는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시카고 맥코믹 플레이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올해 BEA는 '종이 책 대 e-북' 의 성급한 대립구도가 아닌 병행과 공생을 모색하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전시회 개막 하루 앞서 열린 전자출판의 진로에 대한 회의 주제는 한마디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병행 전략(bricks & clicks strategy)' 이었다.

전자출판과 소매서점 유통에 초점을 맞춘 이 세미나는 '인쇄매체와 디지털매체가 결합할 21세기 출판업계에서 수익을 얻는 방법' '소매 서점들은 종이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전자매체를 어떻게 이용할까' 등의 작은 테마로 진행됐다.

이 회의를 주관한 마크 드레슬러는 "순수 닷컴 회사들이 잇따라 몰락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현상은 소매 서점들의 마케팅 채널로 안착한 웹 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근본적으로 병행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종이책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웹 툴을 지렛대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관심이 부상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e-북 솔루션 분야의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표준화하는 문제" 라고 밝혔다.

실제 이런 분위기는 행사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랜덤 하우스, 하퍼 콜린스 등 미국의 10대 메이저 출판사들의 부스가 설치된 행사장 앞쪽은 장소배치의 이점도 있지만 어쨌든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반면 행사장 오른편 뒤쪽에 전체의 5분의 1 정도의 부스를 차지한 e-북 관련 업체들 앞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지난해 e-북 돌풍의 주역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마케팅 담당 매니저 애이미 케롤은 올해 새로운 기술의 신상품은 없다면서도 e-북코너가 지난해 보다 상대적으로 위축된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e-북 관련 또 하나의 주역인 어도비사의 매니저 톰 프렌에게선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우리도 신상품은 없고 또 다른 업체들의 행사 참가도 지난해보다 줄었다" 고 밝혔다.

그에게 e-북 위축의 이유가 닷컴 기업의 몰락 등 경기침체 탓이냐고 묻자 그는 "메이비(maybe)"

"프로버블리(probably)" 를 연발하며 거론하고 싶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그는 "e-북은 현재로선 매우 이른 단계이고 그것이 활성화될 미래도 확실히 점칠 수 없지만 2~3년 안에 학교의 교재시장엔 e-북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 출판 저널인 '퍼블리셔 위클리' 의 편집총책임자 로빈 렌즈는 이와 관련,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e-북은 여전히 관심의 초점" 이라며 "굳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해는 낯설었던 e-북이 올핸 더 친숙해진 점" 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입증하듯 BEA가 열린 1일 미국 출판업계에서 가장 저명한 문학상 중의 하나인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 의 책임자 닐 볼드윈은 올해부터 e-북에 대해서도 시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식산업과 문화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종이책에 대한 e-북의 거센 도전이 현재로선 다소 소강상태 속에 공생을 모색하는 모습을 확인한 올해의 BEA 였다.

그러나 코네티컷주에서 서점을 경영한다는 한 참가자의 말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컴퓨터에 익숙한 현재의 10대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미래에는 어떤 형태로든 e-북이 활성화될 것" 이라는 점에서 e-북과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제부터일 것이다.

시카고 북 엑스포=배영대 기자

*** GE 잭 웰치 CEO "운좋은 사나이 얘기"

올해 북 엑스포 아메리카(BEA)에서 주목받은 인물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 잭 웰치다. 웰치는 9월에 출간할 자서전 'Jack:Straight from the Gut' 의 기념 만찬파티 등으로 단연 주목을 끌었다.

1백10층의 시어스 타워에서 열린 파티에서 그에게 이 책이 한국에서도 동시 출판(청림출판사)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은 가슴이나 머리가 아니라 위장(gut) 밑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느낌으로 역경을 헤쳐나온 과정을 담았다. 수많은 실수를 거듭했지만 그에 당당히 맞섰던 운좋은 사나이의 이야기가 내 책이다. "

이 책은 지난해 가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도 화제의 책이었으나 BEA에서 다시 인기를 모은 것은 매우 암시적이다. 잭 웰치라는 성공신화의 후광 만큼 이번 전시회의 대박 상품이 드물었다는 방증이다.

전시회에 참가한 21세기 북스의 김중현 이사는 "경기불황과 불투명한 미래 등 혼란을 반영하여 분명한 논점을 가진 잭 웰치와 같은 인물위주의 책이 대두됐다" 고 말했다.

BEA는 전세계에서 출판사, 서점, 작가, 에이전트, 도서관 사서, 외국서적 수입상, 유통업체 등 출판 관련자들이 모여 새로운 책의 부상을 점치고 실제 저작권 계약을 맺는 비즈니스 공간이다. 한국에선 영진 닷컴 등이 네개의 부스를 개설했으며, 창작과비평사.생각의나무.웅진닷컴.에릭양 등 40여개의 출판사와 에이전트 등이 참관했다. 내년엔 뉴욕에서 열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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