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해 침범 사흘간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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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상선의 동시다발적 영해 침범과 북방한계선(NLL) 무단통과로 촉발된 남북한 긴장상태가 어제를 고비로 다소 수그러드는 양상이다. 제주해협을 통과하던 네번째 북한 상선이 스스로 중도에 항로를 바꿔 공해로 물러났고, 제주해협으로 접근하던 다섯번째 상선도 항로를 틀어 우리 영해를 우회했다고 한다. 물론 좀더 지켜볼 일이다.

정부와 군 당국의 잘못된 초동대응에서 비롯된 지난 사흘간의 뼈아픈 경험에서 정부와 군이 얻어야 할 첫번째 교훈은 안보와 주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이다. 햇볕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안보와 주권을 희생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어제 국무회의에서 국방부 장관이 영해 무단침범이 재발할 경우 작전예규와 교전규칙에 따라 강력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북한은 사전통보와 허가를 조건으로 우리 영해를 항해할 수 있는 권리를 사실상 인정받았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간 협의가 필수적이다. 이미 정부는 해운합의서 체결을 위한 회담을 북한에 제안했다. 당연히 북한은 여기에 나와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사안을 협의해야 한다. 대화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이번처럼 불쑥 선박을 우리 영해에 밀어넣는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이 회담이 성사되면 정부가 지켜야할 원칙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무해통항(無害通航)과 NLL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NLL은 1953년 정전협정 후 유엔군사령부가 우리의 해상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그은 생명선이다.

NLL 무력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흔들어보려는 북한의 속셈에 휘말려서는 안된다. 제주해협 등에 대해서는 사전통보를 전제로 무해통항을 허용하지만 NLL 만큼은 확고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둘째는 상호주의 원칙이다. 북한 선박에 대해 우리 영해 통과를 허용하면 우리 선박도 북한 영해를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교류협력의 정신에도 맞는 일이다. 북한은 조속히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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