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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아나키스트 이회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아나키즘(anarchism)이 부활하고 있다는 기사를 크게 실어 눈길을 끌었다. 세계화로 인해 초국적 자본과 세계 기구가 종래의 정부를 대체하는 새로운 지배체제로 등장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신(新)아나키스트 그룹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요지였다.

책 소개를 이처럼 거창하게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해방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에 가려 폄하된 '사회적 익명상태' 의 아나키스트들을 부활시키려는 저자의 의도가 이와 무관치 않아서다. 저자의 발문(跋文)은 그 단서다.

"21세기에 아나키즘이 전 세계적 현상으로 확대된 것은 좌우 이데올로기에 가려졌던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전면에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지금에야 (아나키즘이)현실의 사상이 될 수 있다. "

대중적 역사서의 한 모델이 될 만한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근대 초입의 아나키스트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1867~1932)과 함께 그의 동료, 즉 '젊은 그들' 을 함께 재조명함으로써 아나키즘의 가치까지를 다시 묻고 있다. 이회영은 누구인가.

그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었던 동생 이시영(李始榮)과 함께 중국을 무대로 독립운동에 앞장서 온 인물(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이회영의 손자다)이다.

조선 제일의 명문가 출신인 그는 일제의 침탈 직후인 1910년 기득권 모두를 포기한 채 일가 6형제 40여명을 이끌고 만주 망명을 결행한다.

이 때 가산을 정리한 40만원의 거금으로 그는 신흥무관학교를 설립(1912년)해 독립군의 요람으로 키웠고 고종의 망명 계획을 수립하는 등 구국운동을 전개한다. 태생적 민족주의자였던 그가 아나키즘을 사상적 종착점으로 택한 것은 20년대 초 베이징(北京) 시절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예순을 앞둔 나이에 아나키스트로의 개종은 기적이었다. 그에게 신사상을 전한 '젊은 그들' 은 이을규.이정규.백정기.정화암.오면직.유자명 등이었다. 이회영은 32년 다롄(大連)에서 의문사할 때까지 베이징.톈진(天津).상하이(上海) 등을 돌며 아나키스트들의 결사체인 의열단과 다물단 등을 지원했다.

또한 일제시대 가장 급진적인 선언문 가운데 하나인 '조선혁명선언' (23년.일명 의열단선언문)을 쓴 거물 아나키스트 신채호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왜 그는 아나키스트가 됐을까. 김좌진의 동생이며 만주지방의 아나키스트였던 김종진에게 이회영은 이렇게 말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해방운동이나 혁명운동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운동이고 운동자 자신들도 자유의사와 자유결의에 의해 수행하는 조직적 운동이다. 그 형태는 어떠하든지 사실은 자유합의에 의한 조직적 운동인 것이다. "

흔히 '무정부주의' 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은 권력과 제도를 거부하고 자발성과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 사회를 이상으로 한다. 저자는 이회영이 상하이 임시정부 출범 당시 대세(大勢)와 맞서 정부의 조직화를 반대했던 것은 이런 아나키즘의 영향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저자는 이런 아나키즘에서 약육강식의 세계화 시대를 극복하는 대안 사상의 씨앗을 찾고, 기득권을 포기한 채 갖은 궁핍을 마다하지 않은 이회영의 삶에서는 오늘날 드문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배층의 엄격한 의무)' 의 전형을 발견했다.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려 한 이 책은 대신 등장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리는데는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독서시장이 목말라했던 대중 역사서로서의 가치에 크게 흠이 갈 일은 아니다.

정재왈 기자

*** 저자 이덕일은…

이덕일(40)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역사의 대중화' 를 이끌고 있는 재야 사학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숭실대에서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강단사학' 에 합류하지 않았다. 대학이란 공간과 전문 연구서라는 매체의 협소함이 마뜩찮았기 때문이다. 대신 택한 '역사 에세이스트' 의 길은 성공적이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재해석한 『사도세자의 고백』(98년.푸른역사)은 정설(定說)의 토대가 된 『한중록』을 반박한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문제작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2000년.김영사)에서는 송시열을 '조선의 주자(朱子)' 가 아닌 '편협한 소인' 으로 몰아붙였다.

그는 이런 논쟁적인 대중 역사 저작물을 통해 '인간학으로서의 역사' 를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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