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네이션 와이드] 비금도에 소금꽃이 활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요즘 한반도 서해한 섬 일대에서는 천일염 생산이 한창이다.

햇볕과 바람으로만 만들어지는 천일염은 오랜 세월 우리의 식탁의 맛을 유지해왔다.천일염 최대 생산지인 전남 신안군 비금면을 찾아갔다.

전남 신안군 비금면 선착장에서 만난 김종갑(65 ·신안염전)씨는 소금이 한창 영글어 가는 천일염만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투명한 햇살과 맑은 바람이 그의 말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비금도는 연간 6만여t의 소금을 만들어내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30대 젊은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확의 손길이 분주하다.

박순석(44) ·황대심(43)씨 부부는 함께 일하는 동료 부부다.섬 동남쪽 구림리 염전 2.5㏊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전 5시쯤 나란히 일터에 나와 소금 밭에 깔린 시트를 손질하고 물을 새로 대면 두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염수를 염전으로 유입시킨 뒤 햇볕과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키면 새하얀 소금이 된다.

방조제를 통해 밀물 때 들어온 염도 2도의 바닷물은 저수지에서부터 증발지 등 10여 단계를 거쳐 흘러내리면서 최종 결정지(結晶地)에 이르면 염도가 25도까지 올라간다.바닷물이 소금으로 결정되는데는 사흘정도 걸린다.

아침식사를 마친뒤 남편 朴씨는 농사를 짓고 아내 黃씨는 집안 일을 돌본다.이들 부부는 오후 4시쯤 다시 소금밭으로 나와 쟁기질 하듯 밀대를 밀면서 소금을 모은다.손수레에 소금을 1백㎏ 가량 싣고 창고로 옮기는 일도 함께 한다.

소금 창고 안에 매달아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락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소금 밭에서 하루 다섯시간씩 일해 이들 부부가 한달동안 버는 돈은 1백만원 남짓.큰 딸을 목포에 있는 대학교에 유학보내고 고교생인 두 아들의 학비를 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인근의 삼향염전 손봉기(70)부장도 소금 밭에서 45년째 일하며 3남3녀를 키워 냈다.孫씨는 막내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내년까지 '염 부장'일을 계속할 작정이다.

직책은 부장이지만 그의 밑에는 30세 젊은 일군 한명 뿐이다.하지만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염전 축조 설계사이자 숙련된 소금 생산 기술자다.

孫씨는 "청정해역의 소금으로 자식들 별탈없이 키우고 우리 입맛을 지키는데 한 몫 했으니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비금도 구림리가 해방후 남한 천일염 역사의 시초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제시대 천일염을 만들던 평양 귀성염전에서 일하다 해방직후 고향 비금도에 온 박삼만(70년대 작고)씨가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천일염을 생산해 낸 것이다.

당시 비금도에는 불가마에 바닷물을 데워 소금을 만드는 화염장이 많았는데 일제 말기 대부분 방치돼 있었다.

朴씨 등 일곱명이 조합을 조직해 1946년 4월 처음으로 소금을 생산해 냈다.이 때 조합일에 참여한 김성옥(74)씨는 "한 겨울에 지게로 돌을 져 날라 둑을 쌓고 염전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육지에 천일염을 내다 팔아 가마니에 돈을 담아 가지고 올 정도로 호경기를 누리던 때도 있었다.

50,60년대 신안 일대에서는 천일염을 기반으로 국회에 진출하는 이가 잇따랐다.

97년 수입자유화 이후 중국 ·호주 등 가격이 싼 외국산 소금이 밀려들면서 천일염 사업이 사양길로 돌아섰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30㎏ 포대당 3천원에 팔고있다.

신안염전 주인인 金씨는 "근로자와 사업권자가 6대 4로 수익을 나누는 구조에서 한 포대에 6천∼7천원은 되어야 수지를 맞는다"고 말했다.

천일염 1세대인 곽귀재(76)씨는 "천일염은 비금도 지역경제의 버팀목이나 마찬가지"라며 "외국산의 저가공세와 국산 둔갑으로 섬이 황폐화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신안=천창환 기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 비금도는…

전남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50분,자동차를 옮겨주는 철부선을 타면 2시간20분쯤 걸린다.하루 다섯차례 목포에서 배가 들어온다.

1천8백가구에 4천8백여명의 주민들이 살고있다.섬은 크게 논(8백㏊)과 밭(7백㏊),염전(5백㏊)으로 이뤄졌다.동남해안 일대에 20㎞에 이르는 큰 제방을 구축,농토와 염전을 만들어 주 소득원으로 삼고있다.

이 곳 염전에서는 8백여명의 주민들이 매달려 지난해의 경우 6만3천t의 소금을 생산,90여억원의 소득을 올렸다.당도가 높은 소금도 이 섬의 특산물로 꼽힌다.

섬 둘레로 병풍처럼 늘어선 산에 오르면 해상국립공원의 절경에 감탄이 절로 난다.섬 중부 기림산은 사자암·호랑이 바위 등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맑은 날이면 흑산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산허리에서 바라보는 낙조도 일품이다.

원평해수욕장·하느넘 해변가 등은 빼어난 경관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면소재지 덕산리 읍동에는 숙박시설과 노래방 등이 있다.

*** 염업조합 중앙회 주영순 이사장 인터뷰

염업조합 중앙회 주영순(朱永順 ·55 ·목포시)이사장은 "식량자원의 무기화는 세계적인 추세로 최소한 식용염 생산에 필요한 염전 면적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행 염관리법을 개정,천일염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염관리법에 따르면 2001년 말로 수입부담금과 폐전 지원 등을 폐지하게 돼 국산 천일염의 붕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에 조합측은 수입부담금 적용기간을 최소한 3년정도 연장해 폐전 지원을 늘릴 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1997년 7월 소금 수입자유화 이후 수입부담금으로 지원되는 폐전지원비는 지역과 규모에 따라 ㏊당 8백만∼1천3백만원 정도.

하지만 지금까지 폐전 실적은 97년 허가면적 대비 20%를 기록한 이후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천일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섬지역은 폐전으로 지역경제가 붕괴되고 공동화 현상마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도 있다.

朱이사장은 "현행 염관리법이 염업자와 조합을 배제한 채 정부의 의견만을 반영,제대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