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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만… 여자만… '맞춤 서비스'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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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전용공간' 의 시대다. 요즘은 '남성 전용 미용실' 이 늘 만원이다. 지하철 여성전용칸을 타고 출근한 뒤 여성을 동반해야 입장할 수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일도 가능하다. 중년들만 모이는 인터넷 동호회에 접속하면 '독수리 타법' 애용자들이 넘쳐난다.

"한수 알려주겠다고 귀찮게 하는 남자들도 없고 운동에만 몰두할 수 있어 좋아요. 여자들만 있으면 땀을 흠뻑 흘리든, 운동복이 흐트러지든 상관안해도 되잖아요. "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여성전용 헬스클럽.

매일 한시간씩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 회사원 이명희(27.여.서울 종로구 혜화동)씨는 '여자들만 있어 좋은 이유가 뭐냐' 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헬스클럽은 트레이너도 모두 여성이다. 근육을 키우려는 남성과 달리 살을 빼거나 탄탄한 몸매를 가꾸려는 여성의 취향에 알맞은 헬스기구가 비치돼 있다.

여성전용 헬스클럽은 서울에만 20여곳. 월드 여성전용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정수길(46)씨는 "요즘엔 여성 전용이 오히려 손님이 많다" 며 "업소가 대학 주변에 많아 20대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나 중년 주부들도 자주 찾는다" 고 말했다.

헬스클럽뿐 아니라 여성만을 겨냥한 다른 서비스도 포화 상태에 이를 정도다.

서울 시내 백화점들은 주차장의 가장 좋은 위치를 여성 전용으로 운영한다. 지갑.구두 등을 성별 구별없이 취급하던 백화점 1층 매장이 최근들어 온통 여성만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강남 센트럴시티 신세계백화점은 남성용품을 모두 6층으로 모았다. 1층은 화장품.보석.패션잡화 등 여성용 물품만으로 꾸몄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비행기 안이라고 여성 전용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한항공은 A-300급 이상 비행기에 기초화장품이 비치된 '여성전용 화장실' 을 설치했다.

인터넷에는 여성 전용 포털 사이트가 넘쳐난다. 요리.패션.육아.부부생활 등 여성의 세심한 관심사까지 파고드는 이들 사이트 중에는 기혼과 미혼으로 나눠 차별화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도 많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 전석기(45.자영업)씨는 지난 3월부터 매주 한차례 강남구 신사동의 한 남성 전용 피부관리실에 다닌다. 사업상 쳐야 하는 골프 때문에 얼굴이 가무잡잡해진 데다 외모를 잘 가꾸는 것도 대인관계에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사우나에 가는 것보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요즘엔 얼굴이 좋아졌다며 비결을 묻는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합니다. "

하지만 전씨도 중년의 나이에 피부관리실을 찾는다는 게 처음에는 매우 쑥스러웠다. 그러나 이같은 걱정은 남성만을 위한 피부관리실을 이용하고부터 말끔히 사라졌다.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없는 독립된 공간에서 편하게 서비스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남자 손님들도 많기 때문이다.

여성 못지않게 남성만을 겨냥한 각종 서비스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최근 외모와 건강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는 남성이 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영역은 가차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남성 전용 피부관리실만 해도 서울에 50여곳이 성업 중이다. 이젠 남성용 기능성 화장품과 액세서리, 향수만을 취급하는 곳까지 등장했다. 남성 전문 수입화장품 쇼핑몰인 '온리포맨' 은 세안용 화장품과 보디크림 등 수십종의 남성 전용 품목을 선보이고 있다.

중년 남성들의 고민인 뱃살을 전문적으로 빼준다는 인터넷 업체도 있다. 전문의들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뱃살닷컴' 에는 자신감을 되찾고 성인병을 예방하려는 중년 남성들의 접속이 쇄도한다. 지난해 이 업체가 '4주 코스로 뱃살을 빼는 무료 프로그램' 을 운영한다고 발표하자 하루 만에 7백여명의 중년 남성이 신청하기도 했다.

남성을 위한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신용카드도 나왔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LG캐피탈이 제휴, 선보인 '다음.2030카드' 는 남성잡지 구독이나 스포츠 용품 구입 등 남성의 소비 성향에 맞춰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아이디를 한글로 바꿔주세요. 영어는 자판을 잘 몰라서요. "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중년들을 위해 마련된 한 인터넷 사이트의 대화방. 이 곳에서 주고 받는 대화는 젊은이들의 채팅과는 확연히 다르다. 각종 은어와 빠른 속도의 글이 오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느릿느릿한 글 속에 '컴 초보' 를 위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이 사이트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노래도 최신 유행가요가 아니라 트로트곡이다. 게시판에는 중년 회원들이 소개하는 맛집과 레저 정보가 빼곡이 올라와 있다.

특정 집단만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서비스는 단순한 성별 구분을 넘어 '중년 전용' 으로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소비의 주계층인 10대와 여성을 상대로 한 사업이 한계에 이르면서 각 업체들이 새로운 소비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중.노년층만을 위한 시설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중년 전용 인터넷 카페가 창업 인기품목에 포함돼 있다. 도심지 곳곳에 들어서는 이 업소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친숙하지 않은 중년층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히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현장 교육을 실시한다. 차나 술을 마시며 새로운 문화에 접할 수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중년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에어로빅장과 중년 여성만을 위한 헬스클럽 등 틈새 업종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부 스포츠센터가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를 도입하고 있다.

글=김성탁 기자

사진=최승식,

그래픽=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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