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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칼럼] 그의 '심증'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월은 원자 폭탄보다 모진 것인가?

피폭(被爆) 반세기를 뚫고 자라난 풀과 나무가 온통 도시를 뒤덮은 히로시마에서 지난주 제2회 '세계한민족포럼' 이 열렸다. 지명 토론자로 단상에 앉은 내게 청중석에서 누가 슬쩍 손을 흔들었다. 송두율 교수였다.

1970년대 중반 독일의 유학생 세미나에서 그를 만났으니 25년 만의 해후였다. 그때 우리는 유신독재에 함께 분노했는데, 지금 그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의 김철수 후보위원으로 '의심받는' 처지다. 그 의심의 진위는 방사능도 이기는 세월에 맡기고, 휴게시간에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 송두율 교수와 재회

재회의 반가움보다 취재 욕심에 들뜨는 나를 바라보자니 그 동안 신문사 물을 공짜로 마신 것이 아닌 모양이다. 송교수의 정치국원설에 '설마' 하던 사람들조차 99년 황장엽씨가 법원에 보낸 답변서가 공개되면서 '혹시나' 쪽으로 돌아서는 사회 일각의 분위기를 전했더니, 그는 황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각종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대답했다.

재외학자로서 송교수 혼자만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공개된 역사적 사실' 이란 황씨의 주장과는 달리 최씨.문씨 등의 조문 사진이 조선연감에 실렸다고 했다.

망명 전의 황비서가 요코하마에서 만난 '똑똑한 남한 학자' - 황씨가 전한 송교수의 표현으로는 '떨떨한 변절자' - L씨 얘기도 77년 카터의 주한 미군 지상군 철수 발표에 반대한 그쪽 계열을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에서 제명한 사실을 전한 것일 뿐 황씨의 비난처럼 송교수의 '자기 과시' 와는 무관하며, 그 뒤에도 L씨가 독일에 오면 그에게 들르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씨의 답변만 공개되고 송교수의 반론은 공개되지 않은 정보 접근의 불평등이 '혹시나의 의심' 을 부른 셈인가?

송교수는 정치국원 선임에 관해 어떤 제의나 통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혹시 본인 모르게 추진됐을 가능성을 물었더니,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치국원이 어떤 자리인데" 라면서 "정말 내가 정치국원이라면 베를린이나 베이징에서 입북 비자를 신청하고 2주일이나 기다려야 하느냐" 고 되물었다.

그러면 무슨 억하심정으로 황씨가 그처럼 물고 들어가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를 만난 것이 겨우 두번인데 자기도 그게 의문이라고 했다. 물증은 없더라도 심증은 있을 것 아니냐고 다그치자, 그는 우선 김일성 주석과의 4시간 독대건을 들었다.

그날 대화는 왜 동독이 무너졌으며 북한이 자본주의를 모르니 가르쳐달라는 것이었으나, 주석의 이런 배려가 같이 철학을 공부하는 황비서로서는 결코 유쾌한 심정이 아니었을 것이란 얘기였다.

그리고 "황장엽 리스트가 결국 '황장엽 팬터지' 로 끝남에 따라 무엇 하나쯤 공을 세우려는 초조감의 유탄이 나에게 날아든 게 아닌지 모르겠다" 고 했다. 내게는 더 이상 그의 심증을 '문초' 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에 관해 황씨가 김용순 비서로부터 받았다는 전화도 의심스럽지만, 그의 지도로 자신이 자본주의 잔재를 청산하고 주체철학을 바르게 이해하게 됐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개그 수준' 이라고 평했다.

현재의 국가정보원은 협박과 고문으로 간첩을 제조하던(?) 왕년의 정보기관이 아니라는데, 여기서 송교수를 정치국원으로 단정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김철수만도 네명으로 아마도 "국정원 내부의 판단이 엇갈리는 듯하다" 면서, 고위 간부 R씨와 그의 재직 중에 나눈 통음과 허심 탄회의 대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황씨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정원 자신의 증거를 내놓으면" 사건의 매듭이 훨씬 빠를 것이라고 했다.

*** "내가 정치국원이라면"

벌써 2년8개월이나 끌고 있는 1심 판결을 기다리면서, 그는 증거 없는 판결은 무효라는 대륙법 체계가 일본을 통해 한국에 전해진 만큼 승소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독일 법률가들의 격려에 한껏 기대는 듯했다. 당장 6.15 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하려고 노력 중인데, 남한의 협조도 문제지만 아직까지 북한의 대답이 없다면서 "이럴 때 내가 정치국원이라면…"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깟 '준법 서약서' 쯤 쓰고 들어오면 어떠냐는 나의 말에, 조건 없는 서약이라면 당장이라도 쓰겠다고 했다. 행여 전비를 뉘우치고 조국의 품에 안겼다는 식으로 써먹을 요량이라면 자기 인생은 무엇이 되느냐고 물어왔다. 한쪽 얘기만 전한 이 글의 '편파성' 을 인정하며, 가능하다면 황장엽 선생과도 같은 기회를 갖고 싶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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