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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체험학습 ‘뒷돈’ 교장 157명 무더기 적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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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강북의 S초등학교 김모(60) 교장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현장체험학습을 떠날 때마다 H관광 이모(54) 대표로부터 평균 200만~300만원씩을 받았다. 행사 주관 업체로 H관광을 선정하는 대가였다. 김 교장이 2006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이 대표로부터 받은 돈은 2000여만원이었다. 김 교장은 또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J유스호스텔에 머무는 대가로 이 업체 대표 진모씨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800만원을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9일 수학여행과 수련회 등 학교 단체행사 때 특정 업체를 선정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현직 교장 48명과 퇴직 교장 5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전·현직 초·중·고 교장 104명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 학생 단체여행 계약을 부탁하며 교장들에게 돈을 건넨 이씨와 진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번에 적발된 157명 가운데 중·고 교장은 8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초등학교 교장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와 진씨는 학교장 재량으로 학교 단체행사 관련 업체를 결정한다는 점을 알고 행사 전후로 교장실에 직접 찾아가 돈을 줬다.

학교장들은 사례금을 많이 주는 업체를 정해 놓고는 행사가 치러지기도 전에 미리 돈을 받거나 행사를 치른 뒤 분기별 행사 내역을 사후 정산하는 형식으로 사례금을 챙겼다. 버스회사는 버스 한 대당 하루에 2만~3만원가량을, 유스호스텔은 학생 한 명당 2박3일간의 숙박에 8000~1만2000원씩을 교장들에게 지급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전·현직 교장들이 2006년 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두 회사로부터 받은 돈은 7억2000만원이었다. 교장 한 명당 많게는 3000만원이나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운송·숙박·알선·수련업체 등 4개 업체를 압수 수색한 결과 사례금을 건넨 교장 명단과 금액이 구체적으로 적힌 장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지난해 가을 신종 플루가 확산되면서 수학여행 취소 사태가 벌어지자 업체로부터 미리 돈을 받았던 일부 교장은 행사를 취소하고 돈을 되돌려 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아직 해당 지역 교육청에 통보하지 않아 직위해제 된 현직 교장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중·고교에 비해 초등학교는 행정실과 교장 간 긴장감이 약한 데다 이 같은 뒷돈 관행이 너무 오래전부터 굳어져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경찰 수사가 끝나는 대로 혐의가 드러난 교장들을 징계하고 감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시교육청 이성희 교육감 권한대행은 “연루된 학교장은 중징계하고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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