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김현수, 겁나는 4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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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영화 ‘터미네이터’는 속편마다 상식을 초월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와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기술의 진화 자체가 공포였다. 2010년 프로야구판에 터미네이터의 진화를 능가하는 ‘기계’가 나타났다. 두산의 새 4번 타자 김현수(22·사진)다.

2년 연속 3할5푼7리의 고타율로 ‘타격기계’라는 수식어를 얻은 김현수는 27~28일 KIA와의 개막 2연전에서 7타수 6안타(타율 0.857)를 몰아치며 두산의 2연승을 이끌었다. 볼넷도 2개 얻었으니 아홉 타석 중 아웃은 딱 한 번 당했다. KIA 관계자들은 광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며 “김현수 때문에 졌다. 저런 괴물이 다 있나”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의 김현수한테는 던질 공이 없다. 두려울 정도”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틀간의 활약은 김현수의 진화를 알리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27일 개막전에서 4타수 4안타를 때린 것이 3번 타자로 안타 생산에 주력했던 지난해까지의 모습이라면 2안타·3타점을 올린 28일의 활약은 4번 타자로 변신한 올해 상황에 맞춰 진화한 모습이다.

김현수는 선행 주자가 한 차례도 득점권에 나가지 못한 27일에는 정확한 타격으로 치고 나가 2득점을 올렸다. 특히 2회 중전안타와 3회 우전안타는 KIA 선발 로페즈의 완벽히 제구된 변화구를 정확히 받아쳤다. 직구 타이밍을 잡고 있어 하체 밸런스가 약간 안 맞긴 했지만 상체가 여전히 열리지 않고 공의 궤적을 끝까지 보면서 배트를 휘둘렀다. 전형적으로 ‘김현수니까 칠 수 있는’ 안타였다.

28일에는 세 차례나 타점 찬스가 생겼다. 김현수의 타격도 공격적으로 변했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빠르게 승부를 걸었다. 팀이 1-6으로 뒤지던 3회 무사 1·2루에서 전태현의 초구를 당겨 쳐 1루 선상으로 빠지는 1타점 2루타를 쳤다. 8-9로 따라붙은 5회 1사 2·3루에서는 볼카운트 1-2에서 박경태의 유인구성 높은 직구를 때려 역전 결승 2타점을 올렸다. 6회 2사 2·3루에 김현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KIA는 고의 4구를 내줬다. ‘두려움’이 만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만족하지 못했다. 김현수는 “아직 타이밍이 완전하지 않다. 더 조율이 필요하다. 4번 타자로서 제대로 된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현수의 마지막 한마디는 상대 투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투수가 던지는 스트라이크 중에 타자가 못 치는 공은 없다. 얼마나 잘 맞히느냐의 문제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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