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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론을 둘러싼 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동양 출신으로 서구 지성계를 압도한 탈(脫)식민주의론자 중 흔히 '삼총사' 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오리엔탈리즘』(1978년)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본지 1월 18일자 13면 '세계 지식인 지도' 참조)와 스피박, 그리고 호미 바바(Homi Bhabha, 52, 시카고대 교수)가 그들이다. 사이드는 중동(中東)의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으며 스피박과 바바는 인도 태생이다. 세 사람 모두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최근 이들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탈식민주의 연구는 전통적인 학제 편성이나 문화분석의 양식을 변화시키면서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들의 권위가 높아지고 서구의 제도권 학계에 편입됐다는 '의구심' 이 짙어지면서 이론과 비평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예의 '삼총사' 는 자크 데리다나 자크 라캉.미셸 푸코로 대표되는 프랑스 사상가들의 '고급 이론' 에 의존한 탈식민주의 이론가이지 비평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아이자즈 아마드와 터키 출신 중국학자인 아리프 덜릭(듀크대 교수) 등 비판자들은 이들의 탈식민주의 이론이 서구 학계의 주변이 아닌 주류로 편입되면서 이른바 '탈식민주의 비평' 이 지닌 전복적 성격을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최근에 번역돼 나온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이경원 역.한길사)는 이 '삼총사' 의 이같은 이론적 변이(變移)과정(즉 저항에서 유희로)을 날카롭게 분석한 책으로 흥미롭다.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교수인 저자(바트 무어-길버트)는 이 이론가들의 대립항으로 '탈식민주의 비평가' 들을 놓고 그들의 이념적 기반의 우수성을 설명했다.

즉 20세기 초 유럽의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범(汎)아프리카주의를 역설한 미국의 흑인 사상가 W.E.B 뒤부아(1868~1963,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박사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큰 영향을 미침)를 비롯해 '흑인 정체성 회복운동(네그리튀드)' 을 일으킨 프랑스의 에메 세제르(88)와 세네갈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95), 알제리의 민족해방운동가인 프란츠 파농(1925~61), 문학을 통해 아프리카의 식민주의 유산의 청산에 앞장서온 치누아 아체베(71, 나이지리아의 소설가).응구기 와 티옹고(63, 케냐의 소설가).월 소잉카(67, 나이지리아의 작가로 86년 노벨 문학상 수상) 등이 이런 '비평가' 들이다.

'삼총사' 들은 이들의 이념적.이론적 기반을 무시하거나 거세해 버림으로써 탈식민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양아' 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일례로 스피박은 인도의 하위계층 여성을 내세워 서구 페미니즘을 공격하지만 정작 네그리튀드 등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탈식민주의 이론이 급진적이고 해방적인 형태의 문화적 실천이 아니라 오히려 최근의 신(新)식민주의적 세계 질서의 성향이나 기획과 공모관계에 있다는 주장이다.

아무튼 사이드를 제외한 스피박이나 바바의 탈식민주의론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다. 주로 영문학이나 페니미즘 연구자들이 초보적인 수준에서 소개하는 정도다. 국문학에서는 이를 민족문학과 접목하려는 시도(원광대의 한정일.김재용 교수 등)가 있긴 하다.

그러나 아직 별도의 번역.연구서가 없다는 게 낮은 이해도를 말해준다. 앞으로 이들의 존재와 주장이 폭넓게 알려져야 비슷한 탈식민주의에 고민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어떤 지침으로 활용될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 같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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