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 시평] 옛것 봐야 오늘이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오늘의 일을 바로 보려면 때로는 옛 것을 거울 삼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 것을 잘 배우고 익히면 새로운 이치가 저절로 터득된다는 뜻일 게다. 요즘 사람들은 그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 인재를 찾으러 나선 임금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은 정부 고위직 인사 문제다. 언론과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일부 소장파가 인재등용 과정에 있어 폭이 좁고,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인재를 두루 찾아 등용한 본보기라면 삼고초려(三顧草廬) 고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옛날 중국 촉한의 임금 유비가 인재를 널리 구했다. 그는 제갈량이란 인물을 얻으려 그가 사는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예를 다했다. 아마 중국 차(茶) 정도의 선물은 지참했을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얻은 제갈량이 촉한 군대를 호령하는 작전참모로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게 되었다는 것은 소설 삼국지의 얘기 줄거리다.

삼고초려의 교훈을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임금이 인재를 찾아 갔다는 대목이다. 이것은 지금이나 아마 삼국시대에도 찾아보기 드문 사례일 것이다.

당시에도 권력층의 고대 광실로 찾아가 금품을 선물로 바치며 줄을 대려는 야심가들이 구름같이 몰렸을 것이다. 이러한 관행을 깬 것이 유비의 튀는 행위였고, 그러기에 삼고초려가 유명하다.

동서고금의 진리는 출세하려는 자는 강태공(姜太公)처럼 한가하게 곧은 낚시로 세월을 보내기는 헛일이라는 것이다. 부지런히 몇 번이고 연줄 연줄을 찾아 권력층에 접근해야 일이 될까 말까 한다. 이렇게 중국 고사를 풀이하고 보면 최근 장관급 인사를 둘러싼 물의를 냉정하게 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 전통사회의 속담을 뜯어보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는 말이 있다. 예전에도 말이 살 환경치고 제주도만한 데가 없었고, 잘 사는 사람은 서울에 모여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말은 서울 아래쪽 과천 경마장에 가야 우승마로 빛 볼 수 있고, 아들 딸 낳으면 시골 명문고를 졸업시켜야 지연ㆍ학연으로 출세길에 오르기 수월하다. 타지방 출신 배우자를 얻고 자식을 많이 낳아 각 지방으로 분산 교육시키면 어느 정권이 와도 끄떡 없이 잘 지낼 수 있다. 이것이 위험분산의 이치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는 어떤가. 옛날 중국 북방에 한 늙은이가 살았는데 기르던 말이 달아나 낭패인가 했더니 얼마 후 그 말이 준마 한 필을 데려와 횡재한 듯 싶었다.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 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됐으나 전쟁에 나가지 않아 목숨을 구해 요행이었다. 인간 만사에 길흉화복과 그 뒤바뀜이 시간문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박노항 원사 같은 인물이 조직적으로 병역비리를 저지르기 이전의 얘기다.

서울 한복판의 잘 사는 부모라야 멀쩡한 아들에게 없는 병을 빌미삼아 불합격 판정을 꾸며낼 수 있다. 그러나 새옹지마의 참뜻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사 앞일을 알 수 없다. 나중에 꾸민 일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다.

*** 녹비가 호피로 둔갑 안해

마지막으로 요즘 경제예측을 들으면 "녹비에 가로 왈자" 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사슴가죽, 녹비(鹿皮)를 위아래로 당기면 날 일(日)자로 보이고, 좌우로 당기면 다시 가로 왈(曰)자로 보인다는 뜻인데 요즘 한국경제 전망을 두고 낙관ㆍ비관으로 엇갈린 견해들이 나와 국민을 헷갈리게 만든다.

올 첫 4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다소 웃돈다는 데서 낙관론이 나왔다. 그러나 설비투자와 수출 실적이 부진하고 미국경제 전망도 밝지 않고, 물가도 불안하다. 각 분야 구조조정도 아직 멀었다. 정책당국이 마음에 안드는 보도자료를 막아도 경제 실정의 명암을 감출 수 없다. "녹비에 가로 왈자" 는 관리들의 속성을 알면 헷갈릴 까닭이 없다.

관료는 그래야 자리를 지킨다. 그런다고 녹비가 갑자기 호피로 둔갑하거나, 왈자가 어쩌다 바를 정(正)자로 바뀌는 요술은 없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 ·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