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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전쟁터에 아빠 보낸 10살 소녀 키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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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빠를 위해 죽은 생쥐
마욜라인 호프 지음
김영진 옮김
시공주니어
147쪽, 7500원

안녕, 키키. 난 네 이야기를 가슴 졸이며 읽은 한국 소녀야. 너 정말 10살 맞니? 생각하는 거나 마음 쓰는 거나 동갑내기라지만 난 널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 “아빠가 또 전쟁터로 가게 되었다”는 첫 문장부터 내 가슴은 쿵 내려앉았어. 예감이 좋지 않았거든.

다친 군인들을 도우러 떠나는 의사 아빠가 너에게 “사람들이 죄다 집에만 있으면 이 세상은 절대 변하질 않아”라고 말했을 때도 ‘아 이건 아닌데’ 싶더라. 큰 사고가 날 거라는 확신이 선 건 너의 이런 비유 때문이었지. “나는 아빠의 여행이 약간 줄넘기 같지 않을까 싶어 두려웠다, 줄넘기도 한동안은 잘 되지만 영원히 그렇지는 못하니까. 한참 잘 넘다가도 언젠가는 꼭 한 번 발이 걸리고 마니까.”

키키야,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확률로 표현한 네 심정 이해가 가. 키우던 생쥐가 죽고, 개가 죽고, 아빠까지 죽을 확률이 굉장히 낮을 것이라는 너의 가설은 엉뚱하면서도 얼마나 가슴 찡하던지. 일부러 병든 생쥐를 기르다가 죽자 넌 조금 안도하지. 이렇게 말이야. “키우던 쥐가 죽은 여자애들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쥐도 죽고, 아빠도 죽은 여자애들은 얼마 없다. 내가 확률을 조금 낮춘 것이다.”

그토록 아빠의 안전을 빌었건만, 키키야, 여러 날 연락이 끊겼던 너희 아빠가 결국 지뢰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자르게 됐을 때, 난 우리 아빠를 생각했어. 네가 아는지 모르지만 한국은 한민족이면서도 남쪽과 북쪽이 서로를 적으로 여겨 싸운 지 60년이 흐른 분단국가야. 오랜 세월 평화를 누려왔지만 어른들은 요즘도 전쟁이 날 수 있다고 여긴단다. 넌 총알이 떼를 지어 허공을 날아다니는 꿈을 꿨다고 했지. 나도 아주 가끔 전쟁이 나면 우리 가족이 어떻게 될까 싶어 악몽을 꿀 때가 있어. 나도 그 확률을 낮출 수 있는 비법을 연구해볼까 싶어.

참, 키키야. 잠이 안 올 때 네가 외우던 ‘미니마니미니마니’ 말이야. 나도 해봤는데 너희 엄마 말씀처럼 조용히 천천히 읊으니까 도움이 되던 걸. 너를 창조한 네덜란드 아줌마 마욜라인 호프도 글이 안 써질 때면 이 주문을 외우는 것 아닐까. 겁쟁이 남자가 되기 싫어하는 외다리 아빠와 즐거운 여행하기를 빌께. 안녕, 키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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