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부시 에너지 정책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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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에너지정책 보고서를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미국 에너지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보고서는 현재 미국의 에너지 상황을 '위기' 로 규정했다. 앞으로 20년간 석유 33%, 천연가스 50%, 전력 45%의 소비증가가 발생해 심각한 에너지 부족상황이 예상되므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소비절약과 공급 확대 가운데 공급 확대 쪽을 택했다. 국내 석유.가스자원을 발굴하고, 원전(原電)을 건설하며, 파이프라인과 송전시설을 연장.확대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토의 31%인 연방정부 소유 토지에서 석유.가스 채굴을 대폭 허용하는 한편 알래스카 야생동물보호구역도 개방한다. 알래스카의 경우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석유개발을 제안했다가 의회의 반대로 실패한 적이 있다.

특기할 것은 원전 건설 재개(再開)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현재 미국은 1백3개 원전이 전체 전력의 20%를 생산하고 있으나 시설 노후화와 투자부족,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핵 알레르기 등의 이유로 원전사업은 침체상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년간 1천3백~1천9백개 발전소를 세우고 이중 상당수를 원전으로 채울 계획이다.

새 에너지정책에 대한 반응은 둘로 뚜렷이 나뉜다. 공화당과 기업, 특히 석유자본은 미국이 제대로 된 에너지정책을 갖게 됐다고 대환영이다.

이들은 지금 당장 에너지 증산에 나서지 않으면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정전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알래스카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대한 개발도 전체 보호구역의 극히 일부인 8백㏊에 불과하므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본다. 알래스카의 석유는 하루 60만배럴씩 47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므로 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민주당과 환경보호론자들은 절대 반대다. 새 에너지정책대로라면 20년 후 온실가스 배출이 35%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은 부시의 에너지정책이 "집안 난방을 위해 가구를 태우는 것과 같은 바보 짓" 이며 석유자본과 원전설비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한다. 특히 그 자신 오일맨이었던 부시와 딕 체니 부통령의 텍사스 석유자본에 대한 '보답' 으로 파악한다. 지난번 대선 때 텍사스 석유자본은 부시에게 5천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서 미국이 당면했다는 에너지 위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다. 미국은 에너지 과다소비국이다. 세계 인구의 5%인 미국인들이 세계 석유의 25%를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자국산업 보호를 이유로 교토(京都)기후협약에서 탈퇴해버렸다. 에너지 증산을 위한 환경파괴에 앞서 에너지 소비 절약부터 먼저 실천하는 것이 순서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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