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서울대 개방' 구체화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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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대 신입생들의 기초 학력이 저하돼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자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한 질타가 쇄도했다. 현 정부의 교육개혁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비판의 초점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려되는 문어발式 확장

신입생이 서울대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교육부가 아니라 학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서울대 교수에게 물어야 한다. 서울대는 걸핏하면 교육정책 실패의 책임을 교육부에 전가하는데, 중요한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에 서울대 교수가 참여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지 알고 싶다.

신입생의 학력 저하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주입식 교육에 찌든 과거의 학생이나 기초 학력은 부족하지만 창의력이 나을 것으로 기대되는 지금의 학생이나, 일단 대학에 들어오면 학문에 전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우리의 대학은 경쟁력이 없는가. 대통령은 교수가 실력이 없으니까 학점을 적당히 주고 학생들도 그 약점을 아니까 공부를 안 한다고 진단했다.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대학이 상대평가제를 택하고 있고 10년 전 강의노트를 사용하는 교수는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생존할 수 없으므로, 대통령이 대학을 너무 모른다는 서울대 최갑수 교수(이슈투데이 5월 16일자)의 발언에 공감한다.

그러나 서울대가 세계 73위 밖에 안 된다는 대통령의 질책에 정부의 인색한 투자에 비해 서울대 만큼 산출을 많이 하는 대학도 드물다는 崔교수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崔교수는 우리나라의 교수 1인당 학생수는 39.7명으로 OECD국가의 평균이 14.6명임을 감안할 때 대학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서울대의 경우는 20여명으로 다른 대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또한 서울대에 대한 투입을 계산할 때 다른 대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의 기부금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 재원이 기초학문의 육성이나 공공재를 위해 사용되지 않고 단과대학 이기주의로 엉뚱하게 낭비되는 것이 문제다. 도서관 장서의 구비는 미국의 웬만한 주립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호화 건물과 교수식당이 그렇게 많은 대학이 서울대 말고 세계 어디에 또 있겠는가.

대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는 이유는 실력보다 학벌에 따라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한번의 입시로 개인의 운명이 결정되고 출신학교의 서열에 따라 대접받는 사회에서 자격증을 따는 고시공부가 아니라면 공부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니 서울대생의 절반 이상이 고시공부에 매달린다는 소문이 나온다. 서울대 입학생 부모의 50%가 관리전문직 종사자라고 하니 결국 우리 국민은 부유층 자제의 고시공부를 지원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금을 바치는 셈이다.

경제개발 시기에 국가가 정책적으로 재벌을 육성했던 것처럼 서울대는 인적.물적자원을 독점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경제규모가 요구하는 고급인력을 육성하는 데 서울대 하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지금처럼 최우수학생을 독점하고 돈 되는 사업은 모두 손을 대는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하는 한 제대로 된 대학간 경쟁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교육투자는 정부예산의 20%를 훨씬 상회하니 무조건 증액도 쉽지 않다. 따라서 국립대학은 사립대학이 투자할 수 없는 학문분야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중복투자를 피해야 한다. 재벌보다 더 큰 특혜를 받는 서울대가 세계적 경쟁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대학원 중심 육성 바람직

하지만 최근 장회익 교수를 비롯해 20명의 서울대 교수가 제기한 '서울대 개방론' 을 보니 아직은 우리 교육에 대한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가 한시적으로 학부의 입학생과 졸업생을 내지 말고 전국 국립대학의 우수학생을 위탁교육하면서 대학원 육성에 전력하자는 이 안은 전국토의 균형적 발전 및 대학간 협력과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획기적이면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서울대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논의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대의 주인은 우리 국민임을 잊지 말자. '서울대 개방론' 을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인 스스로가 나서야 할 때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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