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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원 정치참여 아직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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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이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 동안의 왜곡된 교육정책과 교권 경시정책을 바로잡고, 교육실정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하기 위해' 내년의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와 반대운동 등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한다.

***정치풍토 선진국과 달라

교총은 그동안 교원의 정년 단축을 반대해 왔고, 지금도 계속해 65세로의 정년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교원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요구해 왔다. 앞으로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현 정부의 교육실정을 심판함과 동시에 교육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을 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교총의 이러한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현 정부는 일련의 졸속적인 교육정책과 4, 5개월 단위로 계속해 교육부 장관을 갈아치워버림으로써 교육 위기를 가속화했다. 나아가 현 정부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이제까지 역대 정권은 말로만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 왔을 뿐 실제로는 학교 교육을 거의 팽개쳐 왔다.

해방 당시나 지금이나 학교의 시설과 설비, 그리고 학급당 학생수 등 기본적인 교육여건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정치권이 이제부터라도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총의 이러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의 여러 나라에서도 교원들은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교원들의 정치참여는 여러 가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우선 우리의 정치적 환경과 정치 풍토가 선진국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의 정당은 나름의 정치적 이념과 일관된 정강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당은 이해관계에 의해 수시로 이합집산하는 정치꾼들의 모임이다. 지방자치단체나 국회의원 후보는 인물 됨됨이보다 당 총재에 대한 충성도에 의해 결정되며, 선거는 지역.학교.문중.개인적 이해관계, 심지어 돈과 권력 등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교원들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는 그렇지 않아도 혼탁한 정치풍토를 더욱 흐리게 할 것이다. 나아가 교총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선거를 통해 미묘한 힘겨루기를 시도한다면 교직사회 자체마저 정치적 태풍권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피해는 학생들이 보게 된다. 교육기본법 제6조에서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돼야 하며, 어떠한 정치적.파당적 또한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아직은 이러한 점에서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는 우리나라의 교원들은 미국 등의 다른 나라와 달리 국가 공무원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교원들에게 정치활동을 허용해주면 모든 국가공무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를 허용해줘야 한다.

그러나 국가공무원이 특정 정당 혹은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면 선거의 공명성이 타격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국가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법을 개정해 국가공무원 가운데서 교원만 예외로 한다면 다른 공무원과의 형평성이 문제된다.

***형평성 문제 등 야기될 듯

셋째는 교원들이 정당한 절차와 합리적인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제정된 법률을 무시해 버리고 이를 위반한다면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그러한 행위를 하는 교사들로부터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우습게 여기는 자세와 태도를 배우게 될 것이다.

아직은 나름의 확고한 판단과 신념이 서 있지 않은 미성년자일수록 이러한 가능성은 크다. 날이 갈수록 학생들이 질서의식도 없고 기본적인 규율마저 지키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교사들의 위법활동은 학생들의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왜곡된 교육정책과 교권경시 정책을 바로잡고자' 하는 교총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칫하면 이로 인해 교육현장이 더욱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발전을 위한 교총의 보다 현명하고 신중한 판단을 촉구한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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