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흡연권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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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깨끗한 제복을 입은 여성 10여명이 홍콩의 한 백화점 옆에 한줄로 늘어서서 담배를 피우는 광경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백화점내 화장품 매장에 고용된 수습사원들이 교육 중간 휴식시간에 한꺼번에 밖으로 몰려나와 백화점 내에서는 금지된 흡연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홍콩 지하철의 출구를 약속장소로 지정하려면 담배연기를 마실 각오를 해야 한다. 금연구역인 지하철역을 벗어나자마자 담배를 빼어 무는 애연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내 금연' 이 철저한 홍콩의 금연제도가 낳은 풍경이다. 공공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디선가 경비원이 즉각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속절없이 5천홍콩달러(약 80만원)를 물어야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숨쉴 구멍이 있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흡연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것조차 불가능해졌다.

홍콩 위생복리국은 지난 12일 "내년 초부터 일반 공공건물의 실내는 물론 식당.술집.가라오케.목욕탕.나이트클럽.마작관 등 유흥업소 내 흡연도 전면 금지할 방침" 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유흥업소들이 즉각 반발했다. 고객들의 흡연권과 자신들의 영업권 침해를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홍콩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위생국의 한 관리는 "지난해 홍콩인들이 흡연관련 질병으로 지출한 의료비가 7억9천7백만 홍콩달러(약 1천2백50억원)나 된다" 고 공개하고 "남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자에게도 권익을 인정해야 하느냐" 고 반문했다. 한마디로 "흡연권은 없다" 는 대답이다.

'소독된 도시' 로 유명한 싱가포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선술집과 개인 공간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에어컨으로 냉방하는 모든 실내가 금연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에서 노천 카페가 성업 중인 이유도 엄격한 실내흡연 규제 때문이다. 흡연에 관대한 나라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얼마전 홍콩 언론에 '어느 묘지' 라는 제목의 시사만화가 실린 적이 있다. 그 만화의 한 가운데는 '흡연자의 무덤' 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의 부인 무덤' '그의 친구 무덤' '그의 고객 무덤' '그의 비서 무덤' 등이 올망졸망 붙어 있었다. 간접 흡연의 위험을 지적한 만화였다.

홍콩의 한 50대 신문배달원은 신문 1면 머리에 난 '금연지구 확대' 기사를 보면서 "벌금이 아까워서라도 담배를 끊어야겠다" 고 말했다.

진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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