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 안동대 교수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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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는 주장을 두고 '지금 죽어야 할 공자가 없는 것이 오히려 탈'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공자가 있으면 살 만한 세상을 만들 거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공자 사상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지역의 유교문화권 개발이나 퇴계탄신 5백주년기념 세계유교문화축제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문화를 관광자원과 문화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기획은 생산적인 문화정책이다. 유교문화권처럼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에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전통문화를 문화산업의 대상으로 포착한 지방정부의 구상도 신선하다.

그러나 정작 유교문화란 무엇이며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식은 명료하지 않다.

유교문화의 핵심은 사람이다. 사람 없는 지역에 유교문화는 설 자리가 없다. 지금 지역주민은 노령화돼 있는 데다 주민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진정으로 유교문화를 살리려면 사람들부터 붙박이로 살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유교문화는 물적 풍요나 권력 추구보다 욕망의 절제와 선비다운 지조를 존중한다. 퇴계의 삶과 사상은 바로 그러한 전범이었다. 따라서 유교문화의 관광화는 산업적 측면에선 개발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왜곡일 수 있다. 더구나 퇴계의 섣부른 상품화는 문화산업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퇴계의 삶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유교문화는 빛과 함께 그림자도 뚜렷하다.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전근대적 유교문화의 폐단까지 답습하게 된다. 지역에는 아직 그런 인습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학자들조차 그 빛에 눈이 부셔선지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 심지어 성역화하거나 이권화하기까지 한다. 가문학(家門學)과 이해관계에 오염된 탓이다.

유교문화를 객관적으로 포착해야 할 학계가 유교문화 개발을 계기로 반유학적 잇속 챙기기에 골몰하면 스스로 자기 학문을 곡학아세의 어용학으로 변질시키는 셈이다. 유교문화 개발의 빛이 유학과 퇴계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기를 기대한다.

임재해 <안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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