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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달래기'농업 정책은 끝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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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허상만 농림부 장관이 "농민과 지방자치단체도 농업을 살릴 방안을 스스로 찾고,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반발을 달래는 식의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쌀 시장 개방 확대를 앞둔 시점에서 농정의 최고책임자로서 하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할 말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이 말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농산물 개방이 본격화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우리 농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정부는 쌀 개방에 대비해 농업경쟁력을 키운다며 70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투입했다. 그러나 농촌은 전보다 더욱 피폐해졌다. 지난 10년간 농업소득은 200만원 는 반면 부채는 약 2000만원 증가했다. 농민은 여전히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고 '시장개방 반대' 데모는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결과에는 무엇보다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는 농업경쟁력 강화는 뒷전이고 '농민표'에만 급급해 농어촌 부채 탕감 등 선심성 정책만 내놓았다. 지자체나 농협, 농민들도 이 돈 나눠먹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막대한 돈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 있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쌀의 추가 개방은 대세다. 그렇다면 정부는 농민의 눈치를 보며 쉬쉬할 게 아니라 어려움을 털어놓고 함께 농촌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농지제도를 개혁해 도시의 돈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고, 정부 수매에 의존하는 양곡제도도 시장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자체와 농민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더 이상 '빚 탕감'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농민들도 '보호'해 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생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일본이 시장 개방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던 데는 농민의 이런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 전환 없이는 앞으로 계획된 129조원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투입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