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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불방망이 끄는 소방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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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현대 대량 득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 2회초 현대 1루 주자 전준호(右)가 삼성 2루수 박석민(左)이 포수의 송구를 놓치는 사이 2루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오후 9시 6회말 현재 현대가 8-5로 앞섰다. [연합]

1m76㎝. 야구선수로서 큰 키가 아니다. 그렇지만 마운드에만 서면 그는 거인이 된다. 싸움닭 같은 그의 기세는 거구의 외국인 선수들까지 주춤거리게 한다. 때론 굳이 마운드에 설 필요조차 없다. 그가 불펜에 나와 몸을 푸는 것만으로도 1~2점 차 앞선 경기에선 상대팀에 커다란 위협이 되곤 한다. '작은 거인'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남자. 바로 프로야구 현대의 마무리 투수 조용준(25.사진)이다.

조용준이 장기전으로 치러지고 있는 한국시리즈에서도 '특급 소방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조용준은 지난달 30일 열린 8차전까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여섯 경기에 등판해 2세이브를 올렸다. 10.1이닝을 던지며 안타 7개와 사사구 3개만 내줬을 뿐 실점은 전혀 하지 않은 호투. 방어율은 당연히 '자랑스러운 0'이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 열린 한국시리즈 8차전에서도 조용준의 활약은 빛났다. 3-2로 살얼음 리드를 하고 있던 8회 2사 후에 등판한 조용준은 1.1이닝 동안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팀의 3승 선점을 이끌었다. 특히 9회말 2사 2루에서 삼성의 마지막 타자 멘디 로페즈를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압권이었다. 자신의 공 끝을 믿지 못하면 결코 선보일 수 없는 '배짱 투구'. 순간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2만6000여 관중 사이에선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이번 정규 시즌에서 조용준은 마무리로는 드물게 10승(3패.34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동점이거나 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 등판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성적. 조용준 자신도 "제 이름을 찾으려면 세이브 순위 말고 다승 순위에서 찾아주세요"라고 농담을 건넬 정도로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정작 '세이브왕'은 삼성의 임창용(36세이브)에게 빼앗겼다. 2세이브가 부족했기 때문. 2승(4패)만 올린 임창용에 비해 '궂은 일'은 더 많이 하고도 왕관은 놓친 아쉬운 시즌이었다. 조용준은 결국 부족했던 '2%'를 한국시리즈에서 채웠다. 반면에 임창용은 2차전과 7차전에서 모두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세이브는커녕 6이닝 동안 7안타 7실점으로 두 차례 무승부의 빌미를 줬다. 방어율은 무려 10.50이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조용준은 "팀이 우승해야 개인의 영광도 생각할 수 있다"며 "챔피언을 향해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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