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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날림 공연기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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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이경희 문화부 기자

대중음악을 담당하면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기사는 콘서트 소식이다. 올해에만도 스콜피온스 내한 공연, 중장년층 대상 조인트 콘서트 '돈텔맘마' 등 10여건의 공연이 취소됐다.

한탕 벌어볼 심산으로 공연계에 뛰어든 일부 기획사가 물을 흐리다 보니 섣불리 콘서트 안내 기사를 썼다가는 오보를 내기 십상이다.

그러던 중 당일 현장에서 공연이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달 31일 잠실 주경기장에서는 비.보아.신화.JTL 등 쟁쟁한 인기 가수가 나오는 '라이브 패스트 2004'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진행 요원도 없고 R.S석 등 좌석 구분도 제대로 안 돼 관객 수천명이 항의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날 출연할 예정이던 한 가수의 매니저는 "공연 전날에도 무대가 완성되지 않아 리허설을 못했다. 개런티를 받았기 때문에 공연장에는 갔지만 경호요원조차 없어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말했다.

공연을 주최한 기획사 '에이븐'에 대해 공연업계에서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이들에게 문의하니 대부분 "들어본 적이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에이븐은 애초에 "한류 붐을 타고 한국 최고 가수를 알린다"는 거창한 취지에다 한국관광공사의 후원까지 걸고 외국인용으로 1000석을 할당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일본에서 팔린 표는 단 17장.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1000장 중 200장은 일본에서 초대권으로 뿌리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소화했다고 한다.

섣불리 한류 열기에 기대려다 사고를 낸 에이븐 측의 사무실.휴대전화는 1일 오후까지 불통이었다. 이런 회사를 믿고 후원한 한국관광공사도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여행사를 통해 이날 공연을 보러 온 유료 관객은 비행기표.티켓값.호텔비 등을 환불받을 수 있지만 초대권을 받아 개별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온 외국인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문제는 부실한 공연기획사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나마 착실히 실적을 쌓아온 몇몇 기획사는 "연말 공연 성수기를 코앞에 두고 찬물을 뒤집어썼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이경희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