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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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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람의 시체는 자세히 보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건 좀 더럽긴 했지만 자세히 바라볼수록 그 물건이 분명히 무력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 옆의 배추밭은 김장철 지나고 나서 휑한 공터가 되곤 했는데 밭 한가운데쯤에는 구덩이를 파고 오물을 갖다 버리고 그 위에 풀이나 마른 짚들을 얹어서 두엄을 마련해 놓고는 했다. 나는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한번도 빠진 적은 없었지만 상두도가집 아이가 빠졌던 기억이 난다. 거의 허리에까지 오물로 뒤덮인 채로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갖은 구박을 받아가면서 찬물 세례를 받던 꼴이 생각난다. 바로 그 오물 구덩이 부근에는 무엇은 무엇끼리 모인다는 식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처치곤란한 물건들을 갖다 버리곤 했다.

나는 거기서 방앗간 집의 무서운 '검은 괴물'이 너부러져 있는 꼴을 보았다. 그 개는 털이 온통 새카맣고 눈은 노랗고 두 눈 위에 흰점이 있어서 언뜻 보면 눈이 네 개나 달린 것 같았다. 어른들이 그런 개는 귀신을 쫓는다고 말들을 했다. 로터리 쪽으로 나가는 길과 시장통으로 나가는 길이 앞뒤로 나란히 있었고 그 사이에는 집들이 서로 등지고 마당을 두거나 샛길을 내면서 줄을 지어 있었는데 중간에 방앗간이 앞뒤의 길이 통할 만큼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방앗간의 너른 마당을 지나면 곧 뒷길로 통하게 되어 있어서 아이들은 곧잘 꾀를 내어 지름길을 낸다며 방앗간 마당을 지나곤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컹컹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당 가운데에 그 검은 괴물이 나타난다. 그것은 비록 자기 집에 목줄이 매어져 있건만 집채를 질질 끌면서 달려나온다. 숨을 헐떡이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놈이 다가들면 누구든 아이들은 엄마야! 외치며 되돌아 나오기 마련이었다. 나도 그런 일을 한번 겪고는 다시는 방앗간 집을 얼씬거리지 않게 되었다. 그 개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건 왜냐고? 이미 죽어 뻗어버린 것을 온 동네 아이들이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이름 따위를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흰 눈이 살짝 내린 어느 이른 아침에 밖에 나갔더니 동네 애들 몇몇이 모여서 소곤대고 있었다.

-저 봐, 주둥이에 거품이 나왔잖아. 쥐약을 먹은 게 틀림없을 거야.

누군가 조심스럽게 발끝으로 죽은 개의 머리를 툭 건드려 보았고 아이들은 작은 비명을 지르며 지레 뒷걸음질쳤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이건 죽은 거야. 저기 내다 버린 쥐나 한가지야.

-그래 예방할 것도 없다고.

그야말로 왼 다리를 들고 깨금발을 뛰면서 침을 뱉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람이 죽는 것과 이미 죽어버린 시체를 거의 동시에 보았을 때의 느낌은 죽은 개를 보았던 때의 느낌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전쟁 뒤에 어른들이 한담을 주고받다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고 하면 '사람'이라고 서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유를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된다. 이런 경우는 즉 살아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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