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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선 자리, 갈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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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다소 쑥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매년 4월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최인훈 선생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구 정권하에서라면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고 선생은 말한다. 소설 『광장』의 초판 서문이다. ‘빛나는 4월’이란 물론 4월 혁명을 지칭한다.

민주주의를 연구해 온 내게 올해 4월과 5월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960년 4월 혁명 50주년,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4월 혁명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돌아보며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른바 민주화의 한국 모델이다. 그동안 경제발전의 한국 모델에 대한 토론은 활발히 이뤄져 왔다. 하지만 산업화 못지않게 한국 민주화 역시 비(非)서구사회에서 선도적이었으며, 동남아시아를 포함해 적지 않은 나라의 민주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왔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4월 혁명과 광주 민주화운동, 그리고 그 연속으로서의 87년 6월 민주화운동에 비춰본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선 자리’와 ‘갈 길’이다. 무릇 어떤 사물이더라도 양면성을 갖듯이 한국 민주주의에도 빛과 그늘이 존재한다.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그 대표적 사례다.

한편에선 ‘민주주의의 만개’를 지적한다면, 다른 한편에선 ‘민주주의의 후퇴’를 강조한다. 이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적 가치판단이 아니라 현실적 사실판단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증대해 온 시민사회 및 문화의 복합성을 고려할 때 현재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것은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본래 의미의 권력 비판과 인권 보호에 대한 다원주의적 상상력이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는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너무 특권화한 나머지 민생을 소홀히 해 온 것에 대한 반발이 작지 않았고, 이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민주화 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당연히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밥 못지않게 중요할 뿐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선진국도 다름 아닌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 사회일 것이다. 경제적 선진화와 정치적 민주화가 상극적 목표가 아니라 상보적 가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연관해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세계화의 진전과 이로 인한 양극화의 강화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20여 년 동안 진행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율 15.2%, 청년 실업률 10%, 노인 빈곤율 45.1%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초라한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최근 손낙구씨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듯이 빈곤은 낮은 투표율을 낳고 이는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소중한 가치라면, 사회·경제적 형평의 제고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과제일 터다.

지구적 차원의 ‘세계 민주주의(global democracy)’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제다. 130만 명에 달하는 국제이주민, 10%를 훌쩍 넘은 국제결혼율, 그리고 공적개발원조(ODA)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의 전환 등 한국 민주주의는 이미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요청받고 있다. 이 점에서 오는 11월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한국 민주화 모델을 알릴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광장』을 발표한 지 30여 년이 지난 1994년 최인훈 선생은 『화두』를 내놓았다. 『화두』에서 내 시선을 끈 구절은 “사람은 관념의 세계 시민은 될 수 있어도 현실의 세계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선생이 세계 시민을 부정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만큼 세계 시민으로, 세계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일 터다. 이제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는 4월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우리 민주주의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