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 시평] 위험한 조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예전 중국 저잣거리에 어떤 두꺼운 것도 뚫을 수 있는 예리한 창과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도 막을 수 있는 튼튼한 방패를 함께 파는 장사치의 허풍이 세인의 조롱감이 되었다 해 모순(矛盾)이란 말이 생겨났다.

창과 방패, 공격과 수비 가운데 어느 쪽을 중시하고 어떤 균형을 유지하느냐는 오늘날 국방에도 유효한 개념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MD체제

요즘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계획을 두고 세계의 여론이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은 적국의 공격으로부터 본토와 해외 주둔 미군, 동맹국 등을 보호하기 위해 지상.공중 및 해상에서 다양한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적국의 탄도 미사일을 목표지점 도착 전에 공중에서 파괴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다시 추진할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이같은 계획은 동서 냉전시대 레이건 행정부가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스' 처럼 레이저 병기로 요격하는 전략방어계획(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에 조지 부시 전 대통령 행정부의 제한적 미사일 공격을 겨냥한 방어시스템(GPALS, Global Protection Against Limited Strikes)으로 바뀌었다가 클린턴 행정부가 SDI 계획을 최종적으로 폐기하고 해외 주둔 미군 보호에 초점을 둔 전역 미사일방어(TMD, Theater Missile Defense)체제로 축소했다.

올해 출범한 부시 현 행정부의 국가미사일방어(NMD, National Missile Defense)체제는 SDI와 TMD 중간쯤 가는 체제로 이해된다.

NMD는 북한.이라크 등 이른바 '불량국가' (보다 정확한 번역은 '깡패국가' )들이 감행할 수 있는 소규모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기 위한 지상시스템이다. 지난주부터 미국 정부는 미 영토만을 고려한다는 해외 비판을 의식한 듯 계획의 명칭에서 '국가' 를 빼고 미사일 방어 체제라고 불러 동맹국까지 방어 영역에 포함됨을 암시했다.

명칭이야 어찌됐든 이 계획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큰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 내 비판의 논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비용이다. 의회 예산국의 추산에 따르면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래 이에 투자된 6백억달러에 추가해 신규 자금 소요가 또 그만큼 될 것이라고 본다.

둘째, 저효율이다. 이미 세차례 시험 중 두번 실패했다. 설사 요격의 성공률을 높인다 해도 진짜와 가짜의 식별ㆍ다발사 대처 등에 문제가 남는다는 것이다.

해외 반대론은 특히 러시아.중국을 중심으로 뜨겁다. NMD가 공격용으로 탈바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군비경쟁을 우려하면서 72년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상 폐기를 위협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약 6천기 보유한 러시아에 비해 고작 20여기에 불과한 중국의 비판 목소리가 높은 것이 주목을 끈다. 영국을 제외한 대다수 유럽 국가는 이 문제에 대해 러시아와의 관계 영향을 고려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부시 행정부와 지지자들은 지상 최대 강국이 불량국가 등의 미사일 위협 노출을 차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막연한 감상론 경계해야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기엔 너무 근접한 거리에 노출돼 있는 한국에는 MD의 유효성이 낮아 보이지만 북한이 미국을 위협해 주한 미군 철수 등 양보를 얻어내고 남한을 고립시킬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MD 개발비용이 비싸도 대부분 자국민의 부담일 것이고,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깡패 공갈억제에는 유효할 것이다. 가상 적국들의 대응 무기개발 추진은 그들 국가의 경제파탄을 앞당길 것이다.

이런 사태를 보는 국내 여론에 분명 위험한 조류가 있다. 겉으로 해외 MD 비판론을 덩달아 되풀이하고, 속으로 통일 후에 북한의 무기가 우리 것이 된다는 막연한 감상론에 무방비하다. '우리' 가 누구인가. 정체성의 혼미가 문제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