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김정남 사건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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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30)이 위조여권을 갖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사건은 한편의 코미디다.

김정남은 북한을 2대째 통치하고 있는 집안의 장자(長子)이다. 그리고 후계자 물망에도 오르고 있다. 그런 인물이 위조여권을 갖고 일본 공항을 들어오려다 붙잡혔다. 그것도 아들로 추정되는 어린애와 다른 여성 2명까지 대동하고 말이다.

이유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 는 것이다. 김정남은 조총련이 초청하면 정식으로 입국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그가 위조여권 방식을 택한 것은 남의 주목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상식적으로 너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본의 대응도 모순투성이다. 김정남인 것이 확실한데도 끝까지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지문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경찰청 내부에서는 김정남을 추방한 데 대한 불만이 상당한데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외무상은 "외무성.법무성.경찰청이 나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고 변명했다.

그러면서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6일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공명당 대표, 오기 지카게(扇千景)보수당 당수를 만나 "이번 사건을 오래 끌었어도 결과는 같았다" 고 해명했다. 고이즈미 스스로도 김정남이라고 인정한 대목이다. 마치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선심을 베푼다는 생색은 내고 싶어 했다. 또 김정남이 떠나는 순간을 친절하게 언론에 공개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김정남의 초라한 모습을 보라" 는 뜻으로 비춰졌다.

절묘한 언론플레이로 북한과의 외교적 마찰은 피하면서 소득을 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대국임을 자부하는 일본치고는 상당히 옹졸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정남을 받아들인 중국도 침묵하고 있다. 세상 사람이 모두 아는데 관련 국가의 정부들은 모두 없던 일로 숨기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뒤로는 외교적 실리를 따지고 있다. 중국은 또 한번 북한에 호의를 베풂으로써 북한에 대한 발언권이 더 커지게 됐다. 흔히 국제정치는 냉정한 계산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종종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국제정치의 흐름에 변화를 몰고 오기도 하는 것이다.

오대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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