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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음성인식시장 세계간판들 각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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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오영환(54)교수는 요즘 마음이 바쁘다. 자신이 25년 가까이 연구해 온 '한국 말귀를 알아 듣는 컴퓨터 기술(한국어 음성인식)' 분야에 외국 업체들이 대거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 정보화 시대에 한국어 음성인식 시장을 외국 업체에 내주는 것은 우리 말을 빼앗기는 것으로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오교수는 자신이 세운 벤처기업인 ㈜보이스피아(http://www.voicepia.co.kr)를 통해 3개 협력업체에 기술이전을 하느라 눈코 뜰새 없다. 음성인식 벤처기업을 차렸거나 기업체에서 관련 연구를 하는 그의 제자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작업이 요즘 주요 일과다.

국내 한국어 음성인식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음성인식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업체들이 대거 진출했는가 하면, 국내 업체들도 이에 질세라 다각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

세계 시장의 절반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뉴앙스 커뮤니케이션스(http://www.nuance.com)사는 지난달 국내 시장에 들어왔으며, 세계 2위 업체인 미국 스피치웍스(http://www.speechworks.com)사도 지난 3월 사무실을 열었다. 미국 컨버세이, 포닉스사 등도 국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선발대를 보냈다. 한국IBM, 필립스 등도 이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에 맞서 국내 대기업들은 음성인식 부문을 떼어 분사하고,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대학 교수들과 연구소들도 벤처기업을 차리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LG종합기술원 음성처리팀이 주축이 돼 1999년 ㈜보이스웨어(http://www.voiceware.co.kr)가 설립됐으며, 삼성종합기술원의 음성처리부문이 조만간 ㈜HCI랩으로 독립한다. 서울대 김남수 교수도 벤처기업을 차렸다.

중국.인도 등 인구가 훨씬 많은 국가를 놔두고 우리나라에 이처럼 세계적인 기업이 대거 진출하는 것은 전화를 유달리 많이 쓰고 하이테크를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라는 것. 업계는 한국어 사용 인구는 7천5백만명으로 세계 11위지만, 음성인식 시장 규모는 4~5위에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국내 음성인식 시장은 약 8백억원이지만 수년 안에 서너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얼마나 알아듣나〓외국 업체들은 한국어는 물론 영어.불어.일어.스페인어.중국어를 97% 이상 정확하게 알아 듣는 이른바 '언어별 엔진' 을 개발했다. 스피치웍스가 국내 협력업체인 ㈜메텔을 통해 지난 2월 현대증권에 구축한 무인 증권거래시스템인 '보이스 스톡(Voice Stock)' 은 국내 음성인식 업계에 충격을 줬다. "○○전자를 오천원씩에 삼백주 사자" 라고 자연스럽게 하는 말을 척척 알아듣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오교수 등 두세곳이 이같은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상용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찾기 어렵다. 국내 상용기기의 대부분은 단어나 숫자를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알아 듣는 수준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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