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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책이다. 내용의 향기는 물론 내용을 담은 그릇인 책의 만듦새 모두가 훌륭하다. '책의 역사, 출판문화에 관한 박물학적 에세이' 인 이 신간은 한마디로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거의 자취를 감춘 골수 인문주의자의 책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상 가는 중세 이후 책문화의 흐름에 대한 묘사도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준다.

책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단아한 책의 만듦새와 함께 '눈이 즐기는 호사' 때문이기도 하다. 책에 담긴 크고 작은 컬러 도판 1백여개는 말로만 듣던 희귀본들의 실체를 보여준다.

중세 1천년 필사본 중 둘도 없이 뛰어나다는 『베리 공(公)의 시도서』, 15세기 구텐베르크활자본의 『42행 성서』등의 사진은 "아름다운 책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는 저자의 신념에 공감을 하게 만든다.

신간을 읽다보면 인제대(사학과, 유럽 지성사)를 정년퇴임한 뒤 명예교수로 있는 노학자의 나이(74)가 쉬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세계는 한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는 말라르메의 시 인용에서 보듯 촉촉한 감성과 인문적 자세 때문이다. 문장 역시 그렇다. 자신은 '문자의 독배(毒杯)를 마신 자' 라는 것이 그의 고백인데, 독한 문자향(文字香)에 취한 그에게 책은 효용적 가치를 훌쩍 넘어선다.

이교수는 그 자신이 1만권 장서가. 희귀본도 상당수다. 저자 서명이 들어있는 『막스 베버』(전15권)전집, 본디 시인 박용철의 소장본이었던 릴케 시집(전2권) 등은 서울과 독일 현지에서 발품을 팔아 컬렉션한 것의 일부.

그가 가장 존경하는 대상은 전형적 인문주의자 몽테뉴. '놀이로서의 책읽기' 에 바쳐진 그의 삶을 닮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 책의 역사에서 몽테뉴는 어떤 위치일까. 저자에 따르면, 서양 중세에서 책이란 근대적 책의 개념과 너무 달랐다. 당시 책이란 '그리스도의 말씀이 육체를 얻은 그릇' 이었다.

당연히 중세에는 몽테뉴나 현대의 우리들처럼 책을 눈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성스런 낭독' 을 하는 것이 주된 독서법이었다. 묵독(默讀)은 '악마의 소행' 으로까지 판단됐다. 당시 성서는 반드시 '아름다운 책' 이어야 한다는 유럽적인 전통이 확립됐고, 최고급 양가죽에 진주.상아로까지 치장된 것도 동양과는 또 다른 책의 전통이다. 성서 한권에 심지어 양 2백여마리가 도륙되기도 했다.

그러면 가장 아름다운 책은 어떤 책일까□ 저자는 순위를 정해놓았다. 중세 최고의 책은 『베리 공(公)의 시도서』. 시도서란 책의 권력이 12세기말 이후 평신도로 넘어가면서 신도들의 일상을 담은 책. 혼수 예물용으로도 쓰인 이 시도서 중 베리 공은 12매 캘린더 형식으로 초호화판으로 제작했다. 저자는 이 시도서의 복제본을 갖고 있다고 한다.

현대 들어 최고의 책은 샤갈의 『그림 성서』. 작가 서명이 있는 1백5점 삽화가 눈부시고, 제작 기간 26년에 2백75부만 찍었다. "책이란 결국 한 시대와 한 국가 문명의 실체다" 라는 저자의 맺음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조우석 기자

***서양의 최고 장서가들

고대 이후 서양 최고의 애서가는 누구일까? 저자에 따르면 '서양 최초의 애서가' 는 아리스토텔레스.그로부터 교육받은 알렉산더 대왕도 당당한 애서가이다.장서 20만권의 도서관을 세워 ‘세계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려한 주인공이 바로 그이다.애서가 열전(列傳)에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도 빠질 수 없다.

러시아 원정 길에도 괴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나폴레옹 역시 '책에 미친 사람’이다.저자는 그가 조세핀에 반한것도 미모가 아닌 지성이었다고 말한다.

이밖에 “한번 눈에 띈 고본(古本)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극작가 몰리에르,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등도 유명하다.

이밖에 책이 좋아 신부에서 고서점 주인으로 ‘전업’해 희귀본을 가진 소장가들을 연쇄살해했던 스페인의 욕심많은 한 신부등도 책의 도도한 역사에서 한 삽화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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