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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부활] 공자 부활과 21세기 세계

중앙일보

입력

중국에서 공자가 부활하고 유교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 스스로 탄압했던 공자와 유교를 전면적으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5년부터 공자 탄신 기념행사인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공식화하고 세계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있다. ‘공자학원’은 영국의 ‘브리티시카운슬’이나 독일의 '괴테인스티투트'처럼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해외에 홍보·전파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그 이름이 ‘마오쩌둥학원’이 아니라 ‘공자학원’인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 전야제에서는 공자와 한자(漢字)를 국가 브랜드를 구성하는 중요한 테마로 내세웠다. 사회주의 혁명 전통에서 끄집어낸 소재는 없었다. 도처에 공자 동상을 세우고 공산당 간부가 유학 경전을 읽는다. 초등학교에서는 『논어』를 독송시키고 방송에선 청소년용 공자 만화영화를 내보낸다. 30부작 연속극 방영도 앞두고 있다. 유학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논어 심득』이란 책은 해적판을 포함해 1000만 부가량 팔렸다. 유교를 국교화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시각까지 있다.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대니엘 A 벨 등 서구 학자들까지 가세해 『중국의 새로운 유교』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등의 저서에서 중국이 유교를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공자의 부활은 여러 이유로 우리에게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 공자 부활은 동아시아 문명사적 의미를 지니는데 우리는 바로 그 문명에 속한다. 서구나 아시아나 다 같이 전근대적 봉건체제를 거쳤으나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동아시아 유교문명은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서구가 100~200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몇십 년 만에 해냈으며 앞으로는 세계경제까지 주도하리라는 예측이 있다. 국가별 지능지수에서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1~5위를 다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국제 경시대회에서도 한·중·일 세 나라가 1, 2, 3위를 차지한다. 한자와 유교문화가 그만큼 우수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구(舊)유교권의 급속한 성장은 그것이 ‘유교에도 불구하고’ 가능했던 것인지 ‘유교 덕분에’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한 문명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자·유교의 부활은 중국 내부의 문제가 촉발했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에는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끄집어 낼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 지도자의 지지율이 임기 말년에는 10%대로 떨어질 정도로 서구식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치권의 리더십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학자들이 현대 민주주의 통치불능성(un-governability)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다.

공자의 위민(爲民) 정치철학·사상은 현대사회에도 유효할 수 있다. 유학 경전을 사변적이고 고담준론(高談峻論)의 철학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공자의 사상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보다 활발한 학술 활동으로 공자와 유학 경전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재검토해야 한다. 중국의 공자 부활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공자·한자와 동이족 간의 연관성 때문이다. 이들은 한자를 은(殷·기원전 1700~1200년)나라를 세운 동이(東夷)족이 창제했다고 본다. 한자의 어원인 갑골문이 은나라 유적지인 허난성 안양에서 출토된 데다 동이족 문화와 한자 생성이치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한편 공자 자신이 은나라의 후예임을 밝혔다.

‘공자=동이족=우리 민족의 일원’, ‘한자=동이족이 만든 글=우리 민족이 만든 글’이라는 등식은 엄청난 폭발력이 내포된 주장이다. “공자도 한자도 우리 것’이라는 주장은 중국의 공자 부활을 배경으로 한·중 관계에도 심각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최근 개봉한 영화 ‘공자’를 만든 후메이 감독은 “공자가 한국 사람이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공자는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비롯해 한국은 역사 왜곡의 천국”이라고 비난하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

물론 우리도 역사적 인물인 공자나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영화 ‘공자’에 대해서는 “사마천의 『공자세가』와 『논어』라는 문헌에 충실하여 영화의 사실성과 작품성은 뛰어났으나 ‘국수주의적’ 자세를 탈피하지 못하다 보니 다른 나라들이 공감할 정도로 공자와 유교를 복원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중국 등 동아시아 권역의 다른 나라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것이 숙제다.

공자와 유교 문명은 결코 우리와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유학 전통이 더 강하다. 공자·유교 문제에 대해선 우리도 ‘지분’이 있다. 필요하다면 우리 정부는 한문교육에 대해 정책 수정을 검토해야 하며 민간 학술 차원에서는 공자와 유학 진흥과 관련해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공자 부활은 대만에 이어 중국에 ‘신유가(新儒家·New Confucianism)’가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한국도 ‘신유가’가 필요한 것인가.

이윤숙 경연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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