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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2004] '2000년 악몽' 재현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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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선거 36일 뒤에야 승자가 최종 확정된 2000년의 악몽을 재연할 가능성이 많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31일 보도했다. ▶접전 주에서 잠정투표 등 뒤늦게 개표되는 표 숫자가 대선 당일 득표차보다 크거나 ▶전국의 여러 선거구에서 개표와 관련해 소송이 벌어져 최종 승자가 며칠에서 몇 주일이 지나야 명확하게 판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1월 2일 밤 미국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서부지역까지 투표가 완전 마감된다 하더라도 TV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4년 전 같으면 일제히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며'○○후보 당선 유력'을 외쳐댔겠지만 이번엔 "××주에서 케리가 수천표 앞선 것으로 집계됐지만 최종 승자는 며칠 뒤에야 판명될 것 같다""○○주에선 부시 변호사들이 재검표를 요구하며 소송에 들어갔다"는 보도들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는 "개표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 말할 게 없다"며 칩거할 가능성이 크다.

?골칫덩이 잠정투표(provisional ballot)=투표자 명부에 없는 사람이 투표장에 왔을 경우 일단 투표하게 한 뒤 신분확인을 거쳐 뒤늦게 산입하는 제도다. 전국적으로 수십만표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치열히 경합하는 주들이다. 25만표의 잠정투표가 예상되는 오하이오주는 12월 1일까지 이 표들의 개표를 마칠 계획이다. 오하이오는 4년 전 부시가 고어에 불과 16만5000표차로 이겼을 만큼 접전지다. 부시-케리의 표차도 25만표 이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12월 1일까지 오하이오는 승자를 정하지 못하고 20명이나 되는 선거인은 공중에 뜨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366표 차로 승자가 결정된 뉴멕시코주도 잠정투표 3만표(추정)의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오하이오와 같은 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02년 콜로라도주 의원선거에서 잠정투표 때문에 승자 발표가 5주나 늦어진 전례가 있다. 잠정투표는 투표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2000년 미 의회가 제정한 것인데, 초접전 양상인 이번 대선에선 혼란만 가중시킨 셈이다.

?군인 투표도 문제=아이오와.콜로라도주와 워싱턴DC는 2일, 펜실베이니아주는 10일, 플로리다주는 12일까지 소인이 찍힌 군인 투표들을 모두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 주마다 군인투표는 수천에서 수만표씩 되므로 대선 당일 득표차가 이보다 적게 나오면 역시 군인투표가 전부 개표될 때까지 당선자 확정이 미뤄진다. 군인투표는 반드시 사람이 손으로 개표해야 해 시간이 특히 많이 걸린다.

?줄소송 가능성=플로리다주 법은 개표 결과 표차가 1% 이하로 나오면 재검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플로리다 내 15개 카운티는 재검표가 불가능한 터치 스크린(전자투표)을 채택해 줄줄이 무효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이미 플로리다에선 민주당원들이 유권자들의 투표장 접근을 방해했다며 공화당을 상대로 10건의 소송을 냈다.

오하이오에서도 민주당이 까다로운 유권자 등록절차로 수천명의 지지자를 잃었다며 공화당 주정부를 제소했다. 9명의 선거인단을 승자독식제 대신 득표율대로 배분하는 주헌법 개정안을 대선 당일 주민투표로 결정키로 한 콜로라도주도 위험하다. 통과될 경우 이번 대선부터 적용할지 다음 대선부터 적용할지를 놓고 소송이 붙어 그만큼 당선자 확정이 늦어질 수 있다.

김희민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미국정치)는 "주마다 고유한 선거방식을 인정한 미국 대선이 극도로 양극화된 대결구도로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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