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권력 지켜주는 힘은 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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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결국엔 돈이다. 와병 중인 야세르 아라파트(75.사진)가 프랑스로 후송되면서도 비밀계좌는 인계하지 않았다고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31일 보도했다. 신문은 팔레스타인 인사들의 증언을 인용해 "10억달러 비밀계좌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돈은 1980년대 초반 팔레스타인이 마약밀매 등에 개입해 번 50억달러 중 20년간 쓰고 남은 것이다. 아라파트는 이 비자금으로 측근을 관리해 왔다.

이 비밀계좌는 젊은 날의 카리스마를 잃고 병까지 든 아라파트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장의 무기다. 그래서 지난달 29일 아라파트가 후송되기 직전 그의 후계자로 꼽히는 아흐메드 쿠라이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 등이 "부재 중 관리를 위해 비밀계좌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아라파트의 귀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금고 열쇠를 넘기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난 아직 살아 있다. 걱정 말라"며 계좌에 대해 한마디 귀띔도 하지 않고 떠났다. 아라파트는 비자금 독점을 위해 비밀계좌를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위독한 상황이 알려지자 프랑스와 튀니지를 오가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던 아라파트의 젊은 부인 수하(41)도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왔다. 이 역시 돈 때문이다.

한편 파리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라파트의 대변인 나빌 아부 루다이나는 31일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진단 결과 아라파트의 병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 소견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아라파트는 파리에 도착한 뒤 파리 남서쪽 클라마르에 있는 페르시 군 병원에 입원해 종합검진을 받았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퇴진 후 새 지도부와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이스라엘 공영 라디오 방송이 31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샤론 총리는 이날 주례 각료회의에서 "진지하고 책임있는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새로 등장하면 중동평화 로드맵에 따른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샤론 총리는 아라파트 와병에 따른 공백에도 불구하고 정착촌 철수를 포기하거나 연기하지 않을 방침임을 확인했다고 이스라엘 신문이 31일 보도했다.

런던.파리=오병상.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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