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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추천한 명의] 박중원 국립암센터 간암센터장 → 윤동섭 강남세브란스 외과 교수(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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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 성공률 50%인 시대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생존율 10%를 밑도는 난치성 암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췌장암이다. 10년 전만 해도 비슷하게 결과가 나빴던 간암은 현재 생존율이 20% 선이며 폐암도 15%를 넘어섰다. 하지만 췌장암은 여전히 10% 미만이다. 그래도 환자 치료를 위해 매달리는 의사가 있다. 강남세브란스 외과 윤동섭 교수(48)가 주인공이다. 그는 ‘처음부터 치료 결과가 좋은 수술은 없다. 가장 간단한 수술인 맹장 수술도 처음엔 수술 후 사망자가 적지 않았다. 완치의 결실은 집념을 가진 외과의사들의 노력이 더해질 때 얻을 수 있는 열매’란 신념을 가지고 있다.

원양 어선 기관장이었던 아버지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었다. 소년 윤동섭은 저녁때면 자녀와 함께 지내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의사 선생님’으로 존경받는 친구 아버지가 부러웠다. 입시 공부로 지칠 때도 항상 친구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고, 결국 의대 입학에 성공했다.

의예과 2학년 때, 일본에 체류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그를 외과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할 일 많을 것 같아” 담도·췌장암 전공 선택

“식구들은 아버지가 병든 사실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신 후 곧바로 사망하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죠. 마음속엔 ‘수술로 피 나오는 자리를 묶어주기만 했어도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부친의 사인은 간경변증 합병증 때문에 초래된 식도 정맥류 파열이다.

졸업 후 외과 의사가 된 그는 세부전공을 외과 수술 중 가장 힘든 분야로 꼽히는 담도와 췌장암 분야를 택했다. 미개척분야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의지를 갖고 전공을 정했지만 막상 본격적인 수술을 진행하면서 좌절감이 밀려 왔다. 특히 교수 발령 후 수술한 43세 여자 환자 사연은 지금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췌장 머리 부분에 생긴 2㎝ 크기의 초기 암이었어요. 6시간에 걸친 수술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 항암 치료도 했죠. 하지만 반 년 후 간에 전이가 된 사실이 확인됐고, 환자는 결국 수술 후 1년 반이 지나 사망했습니다.”(윤 교수)

음식물 분해 효소를 분비하는 췌장과 담도에 생긴 암은 한 덩어리로 취급된다. 수술법도 같은 ‘췌두십이지장 절제술(췌장의 머리 부분·십이지장·담도·담낭 등을 절제한 뒤 남은 담도와 췌장, 그리고 위를 소장과 연결시켜 주는 수술법)’이다.

하지만 5년 생존율은 달라 췌장암은 10% 미만인 반면 담낭·담도암은 30~40%다. 췌장암 예후가 나쁜 이유는 암 세포가 빨리 자라 주변 조직·혈관·림프절 침범도 잦은 데다 위 뒤쪽에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난치성 암을 치료하기에 힘든 점도 많지만 한 명의 생명이라도 건졌을 경우엔 보람도 크다.

“췌장암 생존율이 10%란 건 수술 안 하면 100% 사망했을 환자 100명 중 열 명은 수술 덕분에 살게 됐다는 뜻이죠. 난치병 앞에서도 의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윤 교수)

윤 교수는 수술법 개발에도 열심이다. 실제 그는 2년 전 전신 상태가 나쁜 67세 담낭암 환자를 간의 일부를 제거하는 대신 췌장과 십이지장을 살리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시도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수술법은 ‘외과종양학회지(Journal of Surgical Oncology)’에 게재되면서 학계의 인정도 받았다.

로봇을 이용, 췌두십이지장절제술 때 췌장과 소장을 연결하는 수술법 역시 윤 교수가 국내 최초로 시도해 성공했다.

췌장을 살린 담낭암 수술 세계 첫 시도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환자는 힘든 상황에서도 결코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생명은 인간이 포기할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난치성 암 치료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윤 교수는 환자 치료에 대해 갖고 있는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요약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윤동섭 교수 프로필 

▶1987년: 연세대 의대 졸업

▶1987~1992년: 세브란스병원 수련의 및 외과 전공의 수료, 외과 전문의 취득

▶1995~1997: 연세대 의대 외과 전임의

▶1997년 3월~현재: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

▶1999~2001년: 미국 엠디 앤더슨 암센터 연수. 일본 도쿄대학 및 교토대학 외과 단기 연수

▶저술: 2009년, SCI 논문인 『Surgery』에 실린 ‘Clinical validation and risk factors for delayed Gastric emptying based on the International Study Group of Pancreatic Surgery(ISGPS) Classification’를 비롯해 국내외 논문 40편.


박중원 센터장은 이래서 추천했다
“합병증 두려운 노인환자 수술도 망설임 없어”

“의사는 사람 살리는 게 직업이에요. 생명을 경외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윤동섭 교수는 여기에 특별한 뭔가가 더해집니다. 바로 노인 환자에 대한 완치 노력입니다.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최근 10~20년 사이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전과 달리 고령 암 환자도 전신 상태만 괜찮으면 완치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예요. 하지만 췌장암이나 담도계암완치술은 워낙 큰 수술이잖아요? 자연 환자·보호자는 물론 집도의조차 ‘고령자에게 수술까지 해야 할까’란 의문을 품기 쉽습니다. 하지만 윤 교수는 생명을 구하는 일에 연령이 문제될 여지는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사실 노인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젊은 사람보다 많습니다. 또 결과가 나쁠 때 가족들로부터 ‘노인을 괜히 고생만 시키다 돌아가시게 했다’는 원망을 받기도 쉽지요. 젊은 환자에 대해선 결과가 나쁠 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과 대조되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의사가 치료에 대한 자신감과 생명 존중 사상이 깊어야 합니다. 윤 교수는 이 조건을 모두 갖춘 명의입니다. “국립암센터 박중원 간암센터장은 윤 교수를 명의로 추천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 윤 교수가 췌두십이지장 수술을 하는 환자 중 70대 이상 고령자가 30% 이상이며 이들의 5년 생존율 또한 30%를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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