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 감독 데뷔작 '휴머니스트'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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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한국 영화계의 실력자로 꼽히는 강우석 감독이 신작 '공공(公共)의 적' 을 준비 중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사회악의 뿌리를 파헤쳐 보겠다고 선언했다. 12일 개봉하는 '휴머니스트' 는 그 전주곡이 될 법하다.

인본주의자.인문주의자를 뜻하는 제목과 달리 '휴머니스트' (이무영 감독)는 철저히 '안티' 휴머니스틱한 작품이다.

영화에선 인간적인 요소란 전혀 찾을 수 없다. 가족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가 엉망이다. 마음 편하게 기댈 곳이 한 곳도 없다.

영화의 지향점이 휴머니스트인 건 알겠지만 화면 속에 비친 세상사는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통 같다.

때문에 '휴머니스트' 는 유쾌하게 보기가 어렵다. 영상의 엽기성도 만만찮다. 비슷한 계열의 엽기 코미디인 '하면 된다' (박대영 감독)나 '자카르타' (정초신 감독) 이상이다. 돈을 둘러싼 왁자지껄한 소동을 그렸다는 점에서 엇비슷하나 표현 수위는 훨씬 자극적이다. 때론 역겹기까지 하다.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관을 차창에 매달고 가다 내팽겨쳐 버리고, 거지의 썩은 다리에선 구더기가 우글거리고, 온몸의 타박상을 치료하려고 똥물을 들이켜고, 죽마고우를 삽과 망치로 내려치고, 심지어 순박한 수녀를 겁탈하려고 든다.

충무로에서 소문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해온 이무영 감독은 데뷔작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듯 시종일관 충격적인 영상을 토해낸다. "그래, 이래도 우리 사회가 잘 돌아가고 있단 말이야!" 라고 야유하는 꼴이다.

그나마 작품을 다소 가볍게 끌고가는 것은 익살스런 대화들. "악당도 하루 24시간 내내 악당은 아니다" "목욕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등.

백수건달형의 부잣집 아들 마태오(안재모)가 어릴 적 친구인 유글레나(강성진)와 아메바(박상면)를 사주해 퇴역장성인 아버지(박영규)를 납치하는 모의를 꾸미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좌충우돌이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군대를 탈영해 평생을 도망쳐 다니는 거지(김명수), 사고로 숨진 동료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경관(안석환) 등이 가세한다.

감독은 이같은 난장판을 통해 군대.자본.가족 등 우리 사회의 위악적 구조를 마음껏 조롱한다. 하지만 워낙 등장인물이 단선적.우화적이라 작품의 입체감은 떨어지는 편. 감독의 재기는 확인되나 전체를 봉합하는 연출력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까짓 것 한번 장난쳐 보자" 는 식의 상상력도 영화를 들뜨게 한다. 블랙 코미디의 묘미인 페이소스가 빈약해 아쉽다. "제발 이렇게 살지 말자" 는 역설적 주장은 선명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무엇은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평면적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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