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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아로요 집권 최대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 1백일 만에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체포하면서 시작된 반(反)아로요정권 시위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29일에는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쿠데타 기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권력기반이 취약한 아로요 대통령을 더욱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 군부 동요설=아로요 대통령은 30일 "쿠데타 기도가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고 밝히고 "쿠데타 기도에 일부 야당 상원 의원들이 가담했고 일부 군인도 제의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하지만 한 군 소식통은 "몇몇 장성급 인사의 움직임이 의심스러워 면밀히 관찰 중" 이라고 말해 군 내부에 일부 동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디오메디오 비라누에바 참모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군은 아로요 대통령 휘하에 1백% 뭉쳐있다" 며 군의 충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에스트라다의 측근인 미리암 디펜소 산티아고는 "며칠 안에 군부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며 "군부도 스스로 권력의 향방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것" 이라며 군 동요를 부추겼다.

◇ 시위 격화=주로 빈민층인 친(親)에스트라다 시위대는 지난달 29일 한때 규모가 30만명까지 늘어나는 등 갈수록 위세를 더하고 있다.

이들은 "부자들이 우리의 대통령에 부패혐의를 씌워 쫓아냈다" 고 주장하며 에스트라다의 대통령직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아로요 정부가 30일 새벽 2시(현지 시간) 군에 적색경보를 내리고 주요 시설을 경계하게 한 것도 시위대가 늘어나면서 위기를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군은 대통령궁 주변에 무장차량을, 에스트라다가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국군병원에는 탱크를 배치했으며 시위대에서 2㎞ 떨어진 한 군 기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2천명의 병력을 추가 배치했다.

시위대 지휘부는 대통령궁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친(親)정부 시위대와의 충돌을 우려해 이날 새벽 대통령궁으로 행진하기로 한 계획을 일단 연기했지만 이날 낮에도 마닐라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계속됐다.

필리핀 부패법원은 시위사태를 이유로 현재 수감 중인 에스트라다에 대한 첫 공판을 오는 3일에서 6월 27일로 연기했다.

◇ 계급대결 양상=마닐라 근교 산 후안 시장직에 출마하는 에스트라다의 아들 조셉 빅터 에예르치토는 "이번 시위는 계급전쟁" 이라며 에스트라다 지지자들을 자극했다.

반면 에스트라다 축출에 기여했던 하이메 신 추기경은 "적합한 헌법적 권위에 맞서는 음모를 돕는 것은 부도덕한 일" 이라면서 중산층 이상 시민들에게 반에스트라다 시위대 결성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일부에서는 아로요 정권이 무너지고 에스트라다가 다시 정권을 잡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오전 10시 비상내각을 소집해 이번 사태의 대응책을 검토했으나 내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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