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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잉여금 빚 갚는 게 먼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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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라 빚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된 재정건전화 특별법이 여야(與野)간 이견으로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무산됐다. 양쪽 모두 현 재정상태가 심각하다는 데는 뜻을 같이하면서도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놓고는 큰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 해 동안 쓰고 남은 돈(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의 용처를 놓고 한나라당은 엄격하게 빚부터 갚자는 주장인데 반해 민주당은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안(案)도 외형적으로는 잉여금을 추가경정예산 대신 부채 상환에 쓰도록 하고 있지만, 예외조항이 너무 광범위해 사실상 집권당.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민주당 안은 '▶대규모 자연재해▶심각한 경기침체 등 대내외 여건이 급변할 때▶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재정지출이 시급히 필요할 때▶법령에 의해 국가 지출이 예산성립 후에 발생.증가할 때' 는 국가 채무 상환에 앞서 세계잉여금으로 추경을 편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필요한 모든 경우'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재정이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운용돼선 안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심각한 재정상태를 생각할 때 민주당 안은 너무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국가 채무는 1백19조7천억원으로 전년보다 12조원이나 늘었다. 정부는 이것이 국내총생산(GDP)의 23.1%로 일본(1백5. 3%).미국(65.3%)등에 비해 건전하다고 주장하지만 너무 안이한 계산이다.

결국 국가 부채로 이어질 국민연금.공적자금 손실 등을 감안하면 잠재부채는 훨씬 많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6백조원은 과장됐다 쳐도, 우리의 국가 재정은 심각한 붕괴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정부는 지금까지 부채 상환보다 각종 선심성 지원이나 효과도 신통찮은 경기부양에 뭉칫돈을 쏟아부어 왔다.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한 해도 추경을 편성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당장 올해만 해도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돈은 1조5천억원 정도 되지만 현실적으로 빚 갚는데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지난해 깎아버린 예비비도 충당해야 하고, 여기에다 의약분업 재정적자.시내버스 지원.실업지원금 등 반드시 들어가야 할 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유연성' 을 강조하는 것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잉여금을 이용해 또 다시 선심성 정책을 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우리 재정은 정말 거덜나고, 후손에게 빚더미란 유산만 남겨주게 된다. 더 이상 재정건전화 관련 제도의 법제화를 미뤄서는 안된다.

최대한 빨리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세계잉여금은 우선 빚부터 갚도록 하는 내용의 엄격한 재정건전화법을 만들어야 한다. 만의 하나 추경을 하더라도 '정말 불가피한 경우' 로 제한하고, 집권당이 선심성 정책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그 기준도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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