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선거철 급조정당과 공천장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최근 급조되는 정당들은 공당(公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공당이라면 당연히 공공의 이익에 맞는 대의(大義)를 표방하고, 걸맞은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그런데 급조 정당들은 대개 특정 정치인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당(私黨)에 가깝다.

선거철마다 급조 정당이 출현하는 책임은 기존 주요 정당들에 있다. 기존 정당들이 제대로 정당 구실을 못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공천과정의 문제점이다.

첫째, 각 정당이 아직도 명확한 공천 방식과 절차를 확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원칙 없는 공천 기준과 방식 제시, 계파 간 갈등, 당권 경쟁, 차기 총선에 대한 포석 경쟁 등으로 인해 모든 주요 정당들이 공천의 룰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가 2개월 반 정도 남아 있는 지금쯤은 후보가 결정돼 있어야 맞다. 예비후보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수만 명이 공천의 룰도 모른 채 사무실과 조직을 운영하느라 막대한 경비에 시달리고 있다. 공천에서 떨어질 경우 당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심할 것인지 상상이 간다. 각 당의 공천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다. 동시에 이들은 새로운 급조 정당을 먹여 살리는 토양이다. 탈락자들에게 돈을 받고 공천을 주는 ‘공천장사’가 신당의 생존술이다. 올해엔 8개 선거가 동시에 이뤄지기에 양태가 더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우선 선거법에 정당 공천 시기를 명시해야 한다.

둘째, 주요 정당의 중앙과 시·도별 공천심사위 구성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어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될 우려가 많다. 국회의원들은 다음 총선을 위해 지방선거 후보를 자신에게 협조적인 인사로 공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볼모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우리 정당은 국회의원 선거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조직을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구를 기본 단위로 해 재구성해야 한다.

셋째, 각 정당의 공천 후보 신청 자격을 보면 정당의 장래가 암울하다. 어느 정당은 6개월치 당비를 한꺼번에 내면 후보 신청 자격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평소에 당비를 내겠는가. 당비를 낸 적이 없는 ‘하루살이’ 당원이 어찌 당에 소속감을 가지고, 당의 정책을 구현하겠는가. 신청자들에게 수백만원의 비싼 심사료를 받는 것도 문제다. 과다한 비용은 곧 부패로 연결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급조 정당과 공천장사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 다시 한번 유권자들이 내리는 표의 심판에 기대를 걸 뿐이다.

김용호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