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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혜조 스님-양 비안네 수녀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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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수녀와 비구니. 종교는 다르지만 평생 자신의 믿음만을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지고한 마음만으로 살아가는 운명을 지닌 탓인지 종교를 초월한 순수함과 평온함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며칠 앞두고 경기도 성남에서 여성 사목활동을 벌이는 한 노(老)수녀가 동생처럼 아끼는 비구니를 찾아 서울 도심의 한 절로 나들이를 했다.

수녀의 절집 나들이가 어색하지 않은 것도, 수녀와 비구니가 자매처럼 다정해 보이는 것도 모두 종교를 초월한 믿음과 수행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고찰(古刹) 봉은사(奉恩寺)는 서울 강남 도심 한가운데 빌딩숲 사이에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 봉은사가 천년을 지켜온 삼성동 수도산(修道山)이 울긋불긋한 연등으로 온통 뒤덮여 눈부시던 지난 27일 낮, 머릿수건부터 신발까지 온통 검은색인 梁비안네(60)수녀가 절을 찾았다.

조선 불교의 중흥조 보우 스님을 기려 새로 지은 보우당(普雨堂) 앞에 이르자 한 비구니스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축하합니다, 스님.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성불하십시오. "

수녀의 합장(合掌)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손님을 맞이하는 혜조(慧照.42)스님도 같이 합장한다.

"이렇게 직접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쪽으로…. "

스님이 큰언니 같은 수녀의 좁은 어깨를 감싸며 절집 안으로 이끈다. 실내로 들어서자 용.호랑이.학.종.수박 등 갖가지 형상의 연등이 그윽한 빛을 다투어 뿜어내고 있다. 수녀가 나지막한 탄성을 뱉는다.

"아유, 너무 예쁘다. "

비안네 수녀가 혜조 스님에게 '축하' 한 일은 두가지다. 하나는 부처님 오신날(5월 1일)이고, 또 하나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봉은사에서 열리는 '전통 등(燈) 전시회' 에 출품한 스님의 작품이 최우수상을 받은 일이다. 최우수작은 수양매화 나무에 작은 등을 이어달아 승천하는 용(龍) 모양으로 만든 연등이다.

"불교에서 등불은 지혜와 희망의 상징이지요.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이 되면 모든 사찰에서 등불을 밝히고 부처님이 오신 뜻을 되새깁니다. 그래서 저도 예전부터 연등을 많이 만들어 왔는데, 이번엔 전시회가 있다기에 출품해 본 거예요. "

설명을 듣던 수녀가 "세상을 비추고 희망을 준다는 게 모든 종교가 해야 할 일들이죠" 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수녀와 스님이 서로의 믿음은 다르지만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마음가짐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미전향 장기수 후원사업을 함께 하면서 가까워졌다. 비안네수녀는 성(聖) 베네딕토회 소속으로 사회사목활동을 하던 중이었고, 혜조 스님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인권위원장으로 참여했다. 두 사람 모두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활동을 해오던 터라 '종교가 다르다' 는 거리감 역시 쉽게 건너뛸 수 있었다고 한다.

비안네 수녀가 20여년전 기억을 들려준다.

"1970년대 말 독일에서 공부하던 중 어떤 모임에 갔다가 한 유명한 신학자를 만났었죠. 독일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나라인지라 개신교가 훨씬 많지요. 그런데 그 신학자는 가톨릭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왜 가톨릭신자인가' 라고 묻자, '나의 아버지가 가톨릭신자였으니까' 라고 답하더군요. "

종교란 서로 다른 점보다 닮은 점이 더 많고, 그 선택은 우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비안네 수녀는 대학을 다니던 중 스스로 가톨릭이 좋아 수녀의 길을 택한 경우지만, 예나 지금이나 산중의 사찰을 찾으면 마음이 편안하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혜조 스님이 맞장구친다.

"불교는 교리 자체부터가 타종교를 배척하지 않습니다. 불교가 가장 중시하는 자비심(慈悲心)은 큰 보자기와 같아 세상 모든 것을 감싸안기 때문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제가 전통양식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한 수녀원에 축하선물로 보낸 것도 그런 불교의 가르침이 있어서죠. 처음에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가까운 수녀원에 보내려니까 '안받아주면 어떻게 하나' 는 걱정이 앞서더군요. 그런데 전화해 뜻을 전하니까 외국인 수녀님이 아주 반갑게 받아주시더군요. "

두 사람이 보우당을 나와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 앞마당에 빼곡하게 걸린 연등이 하늘을 가릴 정도다. 대웅전이 보이지 않는 옆마당과 뒤뜰 오솔길에도 양쪽으로 연등이 즐비하다.

작은 오솔길을 오르던 혜조 스님이 발 아래 보일락말락한 작은 꽃을 발견하곤 "제비꽃이 올라왔네. 아이고 귀여워라. 나는 요즘 보라색이 좋더라고요" 라며 허리를 굽힌다. 같이 몸을 낮춘 수녀가 "나도 보라색을 좋아하는데, 스님도 이젠 나이가 들어가나봐" 라며 농담을 던진다. 이어 노(老)수녀는 "나도 이젠 점점 작은 것에 더 눈길이 간다" 며 말을 잇는다.

"뭐든지 많고 크면 정신이 없어요. 이렇게 잡초 사이에 난 제비꽃이나 맨드라미가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지 몰라요. 저는 절도 작고 조용한 곳이 좋아요. 봉은사도 옛날 70년대 법정(法頂)스님이 계시던 시절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조용하고 좋았지요. 사람도 많아지고, 도시가 커지다 보니 지금은 빌딩 속에 갇혀버렸네요. 그나마 절이니까 이런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꽃을 보고 나무를 만질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는 것이겠죠. "

연등 따라 난 길을 안내하던 혜조 스님이 화제를 돌린다. 스님은 "수녀님은 나이에 비해 너무 개방적이세요. 그런데 종교인들 중에 그렇게 유연하고 폭넓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여자의 몸으로 성직에 든 두 사람이 공동으로 느끼는 아쉬움은 종교계 전반의 보수성과 그에 따른 남녀차별이다.

혜조 스님은 "인권이나 통일이나 이런 얘기를 하면 교단 내의 많은 사람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지요. 인권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마땅한 일인데, 무슨 특별한 사람들만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나봐요" 라며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나마 스님은 10년 넘게 활동을 계속해온 덕분에 이젠 교단 내에서 어지간히 인정을 받는 편이라고 한다. 지난 18일엔 스님이 머무르는 청룡암(靑龍菴) 인근 1천여 노인을 초대해 경로잔치를 벌였고, 이어 20일엔 성북경찰서 강당에서 불자를 위한 법회를 열었다. 29일엔 불교인권문화제 행사를 주관했는데,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비안네 수녀는 "나는 어디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저 뛰어가 일할 뿐이지요" 라며 발길을 서두른다. 베네딕토회 성남분원에서 '함께 하는 주부모임' 을 운영하고 있는 비안네 수녀는 영등포교도소 훈련원으로 가는 길에 봉은사에 들렀다.

주부모임은 여성사목 차원에서 본인이 나서서 하는 일이고, 교도소 사목활동은 천주교 차원에서 할당된 일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절 입구 전통찻집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혜조 스님은 다시 보우당으로 돌아가고, 비안네 수녀는 영등포로 향했다.

입은 옷이나 가는 길은 달라도 작고 가벼운 발걸음이 왠지 닮았다.

오병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梁비안네 수녀>

▶1964년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함창상지여중.김천성의여중 교사

▶74년 서강대 신학연구소 근무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사회사목분과위원장

<혜조 스님>

▶1988년 중앙승가대 졸업

▶92년 불교인권위원회 여성분과위원장, '나눔의 집' 건립추진위 집행위원장

▶94년 조계종 개혁회의 기획조정국장

▶2000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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