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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이슈] 헷갈리던 표지 '척 보면 알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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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천차만별인 공항.기차역 등의 공공시설 안내 표지판이 앞으로는 국가표준의 규격화된 그림으로 통일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역의 안내 표지판 모습.김태성 기자

정부가 이번에 만든 '공공안내 그림표지'(픽토그램)는 모두 300개다. 이들 표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화장실.관광안내소 등 각종 시설을 안내하는 표지가 209개, 살얼음.미끄럼 주의 등 안전 표지가 91개다. 이들 그림표지는 앞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이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민간 단체나 기업에는 권장사항이다.

◆ 어떻게 바뀌었나=우선 국제화 시대에 맞춰 표지가 변경됐다. 화장실 표지의 경우 그간 '신랑(남).각시(여)''삿갓(남).족두리(여)' 등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표지는 너무 한국적이어서 외국인이 잘 알아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일반인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 남녀 그림으로 국가 표준을 확정했다. 건물에 따라 색을 변형할 수는 있으나 빨간색 등은 안 된다.

세종대 박진숙(산업디자인과)교수는 "우리는 여성 화장실 표시로 빨간색을 대부분 써 외국인들이 '왜 여자는 요주의해야 하느냐'고 하는 등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번에 경고 의미로 쓰이는 색깔도 구별해 쓰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이 헷갈려 하는 표지들이 대거 정리됐다. 예를 들어 소풍지역 안내 표지로 미국 등에서 사용되는 것을 그대로 베껴 쓰다 보니 우리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았다. 픽토그램에 들어 있는 서양식 야외 식탁이 매우 생소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표지를 보고 '일본의 신사' 표시로 혼동하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야외용 식탁에 사람과 나무를 추가해 이해를 돕도록 했다. 미국.유럽에서 사용하는 병원.의사 안내 표지인 뱀과 지팡이 그림도 '청진기를 목에 건 사람' 표지로 바뀐다. 원래 뱀과 지팡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신(醫神)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뱀에 물린 사람을 치료하는 곳'으로 비칠 소지가 있었다.

동물원 표지는 지금까지 코끼리.원숭이 등 다양하게 표시돼 왔다. 그러나 이번 국가표준에서는 '기린 그림'으로 통일됐다. 현재 영국 등 외국에서는 대부분 코끼리가 동물원 표시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를 동물쇼 건물 등으로 혼동하는 사례가 많아 이번에 기린으로 바꾸게 됐다.

◆ 어떤 효과가 있나=인천국제공항과 서울고속전철역 등에 있는 안내 표지는 각자 따로 돈을 들여 자체 개발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기관.민간시설 등이 안내 표지를 설치할 때마다 이를 새로 개발하는 등 번거로움과 예산 낭비가 컸다. 그러나 앞으로는 국가표준으로 개발된 표지를 그대로 갖다 쓰면 돼 국가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제적인 저작권 시비를 줄일 수 있게 된다. 그간 수출품 가운데 겉 포장에 주의사항을 알리는 데 국적불명 표지가 쓰인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자칫 국제적인 저작권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국가표준으로 '조작 금지''음용 불가' 등의 표지가 개발돼 이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최근 일본에서는 의류 수출업체가 빨래 금지 표지를 출처도 모르고 썼다가 국제소송에 휘말린 사건도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외국에선=픽토그램이 가장 먼저 발달한 곳은 미국이다. 1920년대 이미 교통표지 매뉴얼을 개발해 사용했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도로가 복잡해지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표지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은 48년 런던 올림픽에 픽토그램을 처음 제작해 사용했고, 일본은 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한 공공안내 그림표지를 개발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각국의 그림표지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자 70년대 들어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나라별로 진행해온 그림표지를 통일하는 작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57개의 공공안내 그림표지가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자기 나라 것을 국제표준으로 삼게 하자는 각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 그림표지 이용하려면…기술표준원 홈페이지서 다운로드

산업자원부와 기술표준원은 이번에 완성한 공공안내 표지 그림 300개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보급에 주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세한 모양과 제작법 등을 국가표준정보센터(www.kssn.net)에 올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용자들은 이 홈페이지에 들어간 뒤 왼쪽 하단의 '공공안내 그림표지 검색' 바를 클릭하면 모든 그림을 볼 수 있고, 내려받을 수 있다. 편의점 마크, 쇼핑카트 안내, 놀이시설 위치, 각종 경기장 표시 등 돈을 받고 입장하거나 상업적인 목적에 쓰일 만한 그림도 모두 무료로 쓸 수 있다.

정부는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제작 및 사용권을 유료화한다는 계획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이들 그림은 강제 사용 규정이 없는 권장사항"이라며 "그러나 정부 부처들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이 앞으로 적극 활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일반 산업체 등에서도 이를 쓰지 않으면 혼란과 불편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기관들은 이미 각종 표지를 이들 그림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시래.허귀식.심재우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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