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명인 '바닷가 물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바닷가 물새 한마리, 너무 작아서

하루 종일 헤맨 넓이 몇 평쯤일까.

밀물이 오르면

그나마 찍던 발자국도 다 지워져버리고

갯벌 아득한 물 너비 뿐이다.

물새, 물살 피해 모래밭 쪽으로 종종쳐

걸음을 옮기다가

생각난 듯 다시 물 가장이로 돌아가

몇개 발자국 더 찍어본다.

황혼은 수평선 쪽이고 아직도 밝은 햇살

구름 위지만

쳐다보면 저무는 바다 어스름이 막 닫아거는

하늘 저쪽 마지막 물길 반짝이는 듯.

김명인(1946~)의 '바닷가 물새'

세상 사는 일이 왜 이다지도 힘들고 고달플까. 명예를 얻기 위해, 재물을 쌓기 위해, 권력을 누리기 위해 힘 있는 자는 힘 있는 대로, 힘 없는 자는 힘 없는 대로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나 과연 그 무엇이 영원하고 완전하겠는가. 세월이 가면 이 모두 허망하게 사라질 것을…. 그것은 물 나간 갯벌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는 물새들의 발자국 같은 것, 갯벌에 어지럽게 찍힌 그 발자국들도 물이 들면 속절 없이 지워질 뿐이다.

오세영(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