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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기업 3곳 중 1곳 사외이사진 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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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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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강화=학계 출신 사외이사는 느는 추세다. 갈수록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 현대차는 노사관계 전문가인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현대차 안팎에선 “올해를 선진 노사문화를 정착시키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선언대로 남 교수가 노사관계를 진일보시키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전자(19일 주총)는 사외이사 후보로 주종남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낙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제조업 생산시스템 관련 전문가인 주 교수로부터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전문가인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STX엔진)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지낸 심창구 서울대 제약학과 교수(LG생명과학)는 재선임될 예정이다.

기업인 출신들도 전문성이 부각되는 추세다. KT 사외이사가 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는 대표적인 전문가 영입 케이스로 분류된다. 이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1세대 벤처 사업가다. KT 관계자는 “이 대표는 KT가 추구하는 컨버전스 사업의 시너지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19일 주총)는 이인호 전 신한은행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 고문은 은행권 경력을 바탕으로 재무분야에 풍부한 식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은 홍석주 전 조흥은행장을 새로 선임할 예정이다.

◆전직 고위관료 선호=경제부처의 퇴직 고위관료들이 사외이사의 단골 ‘풀(Pool)’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특히 올해는 지난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이 대거 기용된 게 눈길을 끈다. KCC는 노무현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권오승 서울대 교수를 2년 임기의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게임업계의 강자인 엔씨소프트는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오명 건국대 총장을 사외이사로, 소버린 사태 이후 유지해 온 사외이사진을 대폭 개편한 SK에너지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영주 법무법인 세종 고문을 각각 사외이사로 뽑았다.

임영록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현대차, 정해방 전 기획예산처 차관은 KT, 남상덕 전 한국은행 감사는 SK㈜,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주)두산, 이병주 전 공정위 상임위원은 현대미포조선의 사외이사가 됐다. 이 밖에 현대모비스는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OCI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각각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회사마다 역할 달라=사외이사는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방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실제 사외이사의 권한과 기능은 기업별로 사뭇 다르다. 경영진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사외이사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사외이사에게 충분한 역할 공간을 허용하는 곳도 있다. 현대차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정몽구 회장은 주총을 앞둔 이달 초순 사외이사 다섯 명을 서울 양재동 본사로 초청했다. 새로 선임될 사외이사 두 사람에게 회사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주총 전에) 사외이사들과 회사 경영 현안과 비전을 공유하고 싶다”는 정 회장의 바람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사외이사들에게 회사 전략을 직접 브리핑하면서 “현대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지혜를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회사 관계자들에겐 조만간 사외이사들의 국내 연구소나 공장, 해외 사업장 방문을 추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현대차의 한 사외이사는 “달라진 사외이사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회사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KT 등 대주주가 없는 기업의 사외이사는 상대적으로 힘이 센 편이다. 포스코는 평가보상위원회 등 이사회 산하 5개 전문위원회의 위원장을 모두 사외이사가 맡고 있다. 최근 안철수 KAIST 석좌교수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KT는 지배구조위원회를 상설화하기로 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한 SK그룹 계열사도 사외이사의 역할이 큰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외이사 선출 방식은 제도화돼 있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도록 돼 있다. SK의 한 사외이사는 “최태원 회장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없는데도 사외이사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에서 사외이사진이 경영진과 가까운 인사들로 구성되고, 경영진 결정의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소액주주의 추천을 받아 사외이사를 뽑는 경우는 드물고, 많은 기업에서 대주주나 경영진이 추천한 인사들이 선임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30대 기업 연간 평균 보수 5500만원= 사외이사에 대한 대우는 회사마다 다르다.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외이사 1인당 연간 평균 보수는 5500만원 선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보수가 많은 편이지만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30대 기업 중 사외이사 평균 보수가 가장 많은 곳은 포스코였다. 포스코는 사외이사 1인당 평균 8258만원을 지급했다. 삼성물산(7800만원), SK텔레콤(7700만원), LG전자(7200만원)가 뒤를 이었다. 신세계(6769만원)와 SK에너지(6613만원)가 그다음이었다.

삼성전자의 사외이사는 평균 66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자동차의 사외이사 평균 보수는 4800만원이었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시총 3위지만 사외이사 급여는 3651만원에 그쳤다. 은행권에선 KB금융지주가 637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지주(4800만원)와 우리금융(4200만원)은 4000만원대였다.  

이상렬·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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