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아, 그때 우리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의 남녘 끝 가난한 어촌 하기(萩). 이른 봄기운은 차고 맑았지만 우리의 기분은 착잡하고 답답했다. 지도자를 걱정하는 모임과 함께여서일까. 지난 방문보다 더 마음이 무겁고 침울했다.

일본의 선각자 요시다 쇼인의 서당, 이 작은 방에서 총리.장관, 기라성 같은 일본 근대화의 주역들을 길러낸 곳, 여기가 메이지유신의 산실이다. 이 오지에서 그 막강한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의 대업을 이룩한 인재들을 길러낸 것이다.

1868년, 이웃한 삼개번(藩)시골 젊은 무사들이 목숨을 바쳐 이룩한 역사적 쾌거였다. 미군 함대가 문을 열라고 위협한 지 꼭 15년이 되던 해였다.

이것으로 촉발된 메이지유신은 일본만이 아니다. 아시아, 아니 전 세계 역사를 흔들어 놓은 대사건이었다. 이걸 계기로 일본은 개항, 근대화가 시작되고 드디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일본보다 정확히 13년 뒤, 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강화도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를 닫아버렸다. 우린 닫고, 일본은 열고, 이 차이가 우리의 운명까지 갈라놓은 분수령이 된 것이다. 여기서 그 통한의 굴욕적 역사가 시작되고, 나라만 빼앗겼나?

남북분단, 6.25의 비극, 경제격차, 걸핏하면 자존심을 긁어대는 망언, 그리고 사과는커녕 최근의 역사 왜곡까지, 지금도 우리의 분노의 피를 끓게 하고 있다. 아!

하지만 그때마다 우린 주먹을 쥐고 땅만 칠 수밖에 없는 이 무력감 앞에 민족의 자존심이 갈가리 찢어진다.

옛날엔 우리가 가르쳤는데, 이렇게 역전되다니…. 그 역사의 한 순간이 젊은 날의 내 가슴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신봉승 선생을 모시고 메이지유신의 산실을 구석구석 몇차례나 헤집고 다닌 건 그래서다. 그 오지에서 어떻게 그런 젊은이를 길러낼 수 있었을까. 지금도 우리 머리 속엔 이 절박한 화두가 떠나지 않는다.

그곳 일본땅엔 몇 사람의 선각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세계를 뚫어보는 안목이 있었다. 사리(私利)를 떠나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줄 아는 희생정신이 투철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호연지기를 가르치며 젊은이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그 불길이 메이지유신이라는 찬란한 역사의 꽃을 피게 한 것이다.

'도대체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더란 말이오?' 우린 울분했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했다. 분풀이나 하듯 삿대질을 하며 신선생에게 대들었다. 어이가 없었겠지. 씁쓰레한 입맛을 다시는 선생의 모습이 처연하다.

하긴 신선생이 무슨 죄가 있겠어. 그래도 그때 우리 지도자는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우리의 탄식은 그칠 줄 몰랐다. 아, 그리고 지금의 우리 지도자는?

그리고 우리 자신은?

사회 각계에서 명색이 지도자입네 하고 자처하는 우리는?

솟구치는 분노는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사왜곡?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역사는, 우리 역사의식은 또 어떠한가. 사학자들은 창피해 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지도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대로 가다간 일본을 따라잡긴커녕 격차가 더 벌어지게 돼 있다.

우린 그날 밤, 잠을 설쳤다. 귀로에 오른 우리 마음은 착잡했다.

부관(釜關)연락선의 기점, 시모노세키(下關)대교를 건너며 한 많은 사연을 안고 오갔을 선조들의 모습이 떠올라 또 마음이 아팠다. 죽음의 길, 징병, 징용, 가난한 유학생, 태극기를 숨기고 가슴 조이던 독립투사들, 곧 닥칠 모진 운명도 모른 채 뱃전에 선 정신대의 앳된 얼굴도 보인다. 버스 안의 분위기는 천근같이 무거웠다.

"역사 속에는 우리에게도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 신선생이 우리 마음을 달래려 입을 열었다. 치욕의 역사에도 찬연히 빛나는 면암 최익현 선생은 그 중 한분이시다. 대의를 위해 끝까지 죽음으로 항거한 선생의 이야기는 그 순간의 우리에겐 큰 위안이었다. 쓰시마(對馬)로 가자!

면암의 유배지에서 선생의 높고 맑은 뜻을 기리자는 취지에서다. 이번 주말,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뱃길로 떠난다. 가슴이 설렌다. 그 곳 일본 지식인들이 왜 우리가 이 시점에 여길 왔는지, 이해를 할까. 우린 또 며칠밤 잠을 설쳐야 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