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마라톤] 40km서 불사른 투혼의 스퍼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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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날씨는 화창했다. 출발점에 선 이봉주(31.삼성전자)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가슴 속에 타오르는 승리에의 열망은 보스턴의 하늘에 밝게 빛나는 봄날의 태양보다 뜨겁게 이글거렸다.

자신이 있었다. 지난 겨울 미국 앨버커키에서 고지대 훈련을 하는 등 충분히 대비했고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1994년 처음 출전한 이 대회에서 11위(2시간9분57초)에 올랐던 경험도 있었다.

작전은 분명했다. 94년 대회에서 굴곡이 심한 30㎞ 이후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구간 최고기록을 작성했던 이선수는 30㎞ 지점까지만 선두권을 유지하면 월계관을 차지할 자신이 있었다.

◇ 출발

강력한 우승후보 게자헹 아베라(에티오피아)와 엘리야 라가트(케냐) 등이 초반부터 뒤로 처지자 이선수의 우승욕은 갑절이 됐다. 대체로 평탄한 30㎞ 지점까지 10여명과 선두 그룹을 이뤄 달렸다.

30㎞를 지나면서 승부처가 다가왔다. 이선수의 걸음에 속도가 더해졌다. 최대의 고비인 32㎞ 지점의 '심장파열 언덕(하트브레이크 힐)' 을 넘을 무렵 선두 그룹엔 실비오 구에라(에콰도르) 등 네명만 남았다.

백전노장 이선수가 여기서 진가를 발휘했다. 선두그룹을 이룬 세명의 경쟁자들은 페이스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완급을 조절하는 이선수의 작전에 말려 급격히 체력이 곤두박질쳤다.

◇ 37㎞ 지점

이제는 승부를 걸어야 했다. 이선수가 치고 나가자 99년 이 대회 준우승자인 구에라와 조슈아 셀랑카(케냐)가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미 녹초가 된 추격자들은 곧 한계에 부닥쳤다. 지난해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초인적인 막판 스퍼트로 준우승을 차지한 이선수는 40㎞ 지점을 통과하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 구에라와 셀랑카는 차례로 추격권 밖으로 멀어져 갔다. 3파전은 끝났다.

◇ 마지막 2㎞

연도에 늘어선 관중들의 환호성이 끝없이 이어졌다. 독주, 또 독주…. 단거리 선수처럼 빠르고 힘차게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월계관이 이봉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2위는 2시간10분7초의 구에라, 3위는 셀랑카(2시간10분29초)가 차지했다. 여자부에서는 케냐의 캐서린 은데레바가 2시간23분53초의 기록으로 2년 연속 우승했다.

허진석.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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