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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출사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천하를 손에 넣을 야심에 차 있던 유비가 오두막집에 살던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은 끝에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서기 207년)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군사를 일으킨 지 20년이 넘어 명성이 자자하던 황숙(皇叔)신분의 유비가 27세의 청년 제갈량에게 그처럼 머리를 숙였겠느냐는 것이다.

제갈량이 죽기 1년 전(233년) 태어난 진수의 정사『삼국지(三國志)』는 삼고초려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제갈량과 동시대 사람인 어환이 쓴『위략(魏略)』은 제갈량이 먼저 유비를 찾아간 것으로 기록했다. '제갈량은 조조가 형주를 칠 것을 예견하고 유비를 찾아가 대비책을 역설했다. 유비는 제갈량의 분석이 매우 날카롭고 지략이 뛰어난 것을 알아보고 상객(上客)으로 모시게 됐다' 는 내용이다.

서진(西晋)시대 인물 사마표의 저서『구주춘추(九州春秋)』도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오랜 세월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청나라 학자 홍이선 같은 이는 아예 "둘 다 사실이다" 는 주장을 내놓았다. 유비가 처음에는 자신을 찾아온 제갈량의 큰그릇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참모 서서가 극력 추천하자 뒤늦게 삼고초려에 나섰다는 풀이다.

삼고초려는 '이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글을 논할 자격이 없다' 는 제갈량의 명문장 출사표(出師表)에도 등장한다. '선제(유비)께서는 신의 미천한 신분을 개의치 않으시고 귀한 몸을 굽혀 신의 초가집을 세번이나 찾으시어…' 라는 구절이다. 물론 꾸며낸 일화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제갈량이 민심을 통일하고 군의 사기를 올리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넣었다고 해석한다.

다이빙궈(戴秉國)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방한(訪韓)기간 중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을 만나 출사표가 적힌 죽간(竹簡.대나무로 만든 책)을 선물해 작은 화제를 낳았다.

李총재에게는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게 주는 것" , 李위원에게는 "내년에 큰 영광이 있기 바란다" 는 덕담도 곁들였다. 출사표는 전쟁을 앞둔 비장한 마음을 표현한 글이므로 두 정치인도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제갈량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오장원(五丈原) 진중에서 숨졌다. 이색적인 선물이지만 지나치게 의미를 두면 모양새가 우스워진다. 제갈량의 우국충정이나 되새기면 족할 것이다.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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