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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성직 50년' 행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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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사제의 길로 들어선 지 50년이 됐다. 12일 명동성당에선 그의 사제 서품 반세기를 축하하는 '금(金)경축' 행사가 열렸다. 추기경은 6.25 전쟁 와중인 1951년 사제의 길에 들어선 뒤 69년 최연소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98년 은퇴한 이후에도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원로로 존경 받고 있다.

그의 사회적 비중이나 교회 내의 위치에 비해 행사는 조촐했다. 미사가 끝난 뒤 간단한 축하 인사를 하고 성가대의 축하곡을 들은 데 이어 그리고 바로 옆 가톨릭 회관으로 옮겨 평범한 오찬을 나눈 것이 전부다. 외부에 특별히 알리지도 않았고,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들이 모여 함께 미사를 올린 데 불과하다.

김추기경은 '추기경' 이란 자리에 오른 지 25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은(銀)경축과, 서울대교구장 재임 25주년을 기념하는 은경축 등 행사를 매번 사양해왔다. 세속에서 중시하는 환갑이나 칠순잔치도 마찬가지였다. 94년 추기경 은경축 때는 주위의 행사준비를 만류하기 위해 아예 시골 수련원으로 피정을 떠나기도 했다.

이번 기념일 역시 추기경은 조용히 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무 특별한 준비도 안한 것이 이번 금경축행사다. 가톨릭 전통에 따라 이뤄지는 연례적인 부활절 행사의 하나에 불과했다.

행사가 열린 12일은 부활절을 앞둔 '성(聖)목요일' 이자 '사제의 날' 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직전 최후의 만찬을 나눈 날을 기념하는 목요일인데, 이날 만찬을 통해 예수의 제자가 사제로 탄생했다는 의미에서 사제의 날이 됐다. 가톨릭에선 매년 이날 서품 50, 60, 70주년을 맞는 노(老)사제들을 교구별로 모셔 점심을 대접한다.

김추기경은 자신이 소속한 서울대교구의 초청을 받아, 올해 한국인 신부로는 처음으로 70주년을 맞은 임충신 신부 등 다른 노신부 네명과 함께 참석한 것이다. 추기경이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을 꺼리기에 화려한 행사가 따로 준비되진 않지만 그가 지나온 궤적을 정리하는 객관적.학술적 작업은 이어질 전망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추기경의 공적인 삶을 정리하는 『김수환추기경 전집』(전18권)출간이다. 가톨릭 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신앙생활연구소(소장 신치구)가 준비 중인 전집은 추기경의 서품 50주년과 팔순(6월 28일)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6월 중 선보일 예정이다.

전집은 추기경이 사제서품 이후 2000년까지 발표한 각종 기고.연설문, 인터뷰와 강론 등 거의 모든 기록을 모은 것이다. 연구소는 우선 6월 중 아홉권을 내놓고, 나머지 아홉권은 9월 말까지 완간하는 계획이다. 전집은 '목자의 소리' '하느님의 존재' '인간의 근본문제' '진리의 샘터' '사제의 길' '한국교회와 민족복음화' '국가권력과 교회' 등 주제별로 묶었다.

전집 출간 역시 당초 추기경이 반대해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연구위원들간에 전집 발간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같은 의견을 추기경에게 알리며 자료를 요청하자 추기경은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전집을 만드느냐" 고 극구 반대했다.

연구소는 결국 전집 발간 계획을 보류했다가 98년 추기경이 은퇴할 당시 다시 한번 발간 허용을 호소했다. 신치구 소장은 "추기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활동한 우리 현대사와 교회사를 정리하는 일이라며 간곡히 부탁을 드려 허락을 받았다" 고 말했다.

그리고 추기경의 팔순을 맞아 열 출판기념회는 아무리 추기경이 꺼리더라도 외부 손님을 초대하는 잔치로 꾸밀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천주교의 공식연구기관인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는 추기경의 서울대교구 재임 30년을 정리하는 화보집을 준비 중이다. 수천 장에 이르는 사진을 모아 곧 선정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이르면 8월 중 출간될 것으로 보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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