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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으면 기형아 출산' 과장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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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최근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주부 K씨(26)는 고민에 빠졌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고 떠났는데 허니문 베이비가 생긴 것.

K씨는 기형아 출산이 두려워 의사를 찾았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의사마다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불안한 K씨는 결국 낙태수술을 받았다.

평소 코가 나빠 고생하던 주부 L씨는 임신 후 극심한 코막힘에 시달려야했다. 최근 감기에 걸려 비염이 도졌는데 기형아가 두려워 억지로 감기약을 복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 사실을 모르고 약물을 복용한 주부들이 흔히 겪는 사례다. 그러나 의학적으론 대부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약물복용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의 위험성이 과대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제일병원 산부인과 한정렬 교수팀이 최근 임신 중 약물을 복용한 임산부 1백20명을 1년간 추적관찰한 결과 기형아를 낳은 사례는 한건도 없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약물복용 사례는 감기가 28%로 가장 많았고 피부질환(11%), 위장질환(11%) 순이었으며 신혼여행시 복용한 말라리아 예방약도 3.7%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들 중 30%가 의사에게 낙태를 권고받았으며 실제 6%가 낙태시술을 받았다는 것.

한교수는 "미국태아기형학회에 따르면 약물복용의 경우 95%에서 태아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설" 이라며 "실수로 약을 복용했다고 낙태시술을 받는 것은 난센스" 라고 밝혔다.

기형아 출산이 입증된 약물은 손에 꼽을 정도. ^페니토인 등 간질치료제^레니텍 등 고혈압치료제^결핵이나 중이염에 사용하는 카나마이신^먹는 여드름 치료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제제나 피부에 바르는 연고제는 훨씬 안전하다.

임신 사실을 모르고 가슴 X - 선 촬영이나 CT 등 방사선을 사용한 신체검사를 받는 경우도 대부분 안전하다. 한교수는 "가슴 X - 선 촬영보다 수십배 많은 방사선을 사용하는 CT만 해도 방사선 양이 3라드 정도며 이는 태아에게 해가 입증된 10라드보다 훨씬 적다" 고 말했다.

10라드의 방사선을 받았다 하더라도 태아에게 백혈병을 일으킬 확률은 1천분의1 정도라는 것. 가능하면 약물이나 X-선을 사용한 신체검사는 임신 중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실수로 그랬다 하더라도 낙태를 생각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결론이다.

여기엔 만의 하나 의료사고를 의식한 의사들의 소극적 태도도 관여한다. 괜찮다고 했다가 기형아가 나올 경우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걱정하기 때문. 성급한 낙태보다 의사와의 상담과 주기적인 초음파검사 등으로 기형 여부를 확인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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