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토관리 분주… 주민에 식수 할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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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옥에서 천당으로 왔군. "

1997년 여름 특별기로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한 하원의원이 공해(公海)를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 말이다. 당시 주위 사람들은 그가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과 풍요로운 한국을 비교해 한 말로 이해했다.

그러나 실은 남북간에 천양지차인 산림녹화에 관련한 언급이었다.

북한의 산들이 벌거숭이가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최근 북한은 나무 심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 내각은 지난해 오는 2010년까지를 목표로 한 '산림조성 10년계획' 을 세웠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73~82년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기간' 으로 정한 것을 연상케 한다.

북한은 또 매년 3, 4월을 '봄철 국토관리 총동원 기간' 으로 정하고 군중운동 스타일로 국토관리 및 환경보호를 위한 나무 심기에 나섰다.

북한의 식수일(3월 2일)은 우리 식목일보다 한달 앞선다. 식수일은 당초 우리보다 하루 늦은 4월 6일이었으나 95, 96년 잇따른 대홍수 피해를 겪은 이후 산림녹화의 필요성을 절감해 99년부터 이날로 앞당겼다.

북한은 식수일부터 두달간 전국적으로 나무 심기에 나서며 주민.군인.근로자는 물론 학생들까지 나서 할당구역에 나무를 심는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식수면적을 앞세우던 그동안의 과시형에서 벗어나 연료림 조성에 치중하고 있다. 에너지난 해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도로변과 철길에 이깔나무.아카시아.포플러 등 경제림을 심는 것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강조하는 '실리주의' 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보도매체들은 '하나의 돌을 쌓고 한 삽의 흙을 퍼도 질적으로 해야 한다' 며 쓸모있는 국토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봄철 국토관리기간' 에는 나무심기 외에도 도로 정비, 강.하천 정리도 집중 시행한다.

최근 개성에서 평양 등지로 나가는 외곽도로가 대대적으로 보수.정비되는 것이나 청천강.두만강 지역의 둑 보수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북한은 지난해 이 사업을 통해 20만 정보(1정보〓1㏊)의 산림 조성과 4천여㎞의 도로 건설.정비 등의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경제 주름살이 다소 펴진 사정을 감안해 산림녹화나 도로정비 등 국토관리사업도 더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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