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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애덤 킹과 오토다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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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인다). " 일제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체육관이나 초.중.고교에서 쉽게 볼 수 있던 표어다. 육체의 강건함을 우선시하는 내용이 군국주의 일본뿐 아니라 해방 후 군사정권의 입맛에도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는 체육이나 교련 담당 교사들이 학생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명분으로도 활용됐다.

국어사전에까지 실린 이 격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육체가 건전하지 못하면 정신도 건전하지 못할 것" 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달리기나 던지기를 제대로 못하는 허약한 학생은 차치하고라도 장애우들에게 엄청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 격언은 고대 로마의 유베날리스(AD 55□~127□)의 시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표현이 부정확한 것은 물론 당사자의 뜻과는 정반대로 해석된 것이다. 로마시대 최고의 풍자시인으로 평가받는 유베날리스는 5권의 풍자시집을 남겼는데 문제의 내용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제10시편(제4권 수록)에 나온다.

시는 인간의 욕망-부.권력.명예.장수.개인적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검토한 뒤 욕망은 예외없이 실망이나 위험을 부른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야 할 것은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그리고 용기(a sound mind in a sound body, and a brave heart)" 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이 대목은 기름칠로 번질거리는 로마 검투사들의 근육을 바라보면서 "이 멍청이들이 생각도 할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기분으로 썼다고 한다. 시인은 당시 유행한 신체단련 풍조를 못마땅해 했던 것이다.

원뜻과 달리 무식한(?) 내용으로 변질된 표어가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사회가 민주화된 데다 장애를 대하는 인식이 어느 정도 나아진 덕분일 것이다.

지난 5일 프로야구 잠실 개막전에는 미국에 입양된 장애아 애덤 킹(9.한국명 오인호)군이 초청돼 시구를 했다. 두 다리가 없는 소년의 밝고 명랑한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한편 팔.다리가 없는 일본의 저명인사 오토다케 히로타다(24)는 지난달 25일 와세다대 후배 히토미(22)와 행복하게 결혼했다. 의지력과 낙천적 성격으로 장애를 극복한 그의 성장기는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예정이다.

부끄러운 의문 한가지. 킹군이나 오토다케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그렇게 구김살 없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

조현욱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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