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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르포] 뙤약볕 속 20만 “탁신 쏘쏘” … 정부선 ‘긴급사태’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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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결전의 시간(High Noon)이 됐다.”

14일 정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지지단체들이 주도하는 ‘100만 시위대’의 가두 행진을 앞두고 태국의 주요 신문·방송은 이렇게 표현했다. 행사가 예정된 랏차담넌 거리와 사남루앙 광장에선 전날 밤 8만 명(경찰 추산)이 모였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친탁신 단체들은 20만 명이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 거리는 방콕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 등 주요 시설이 인접한 곳이어서 경찰 시위진압 부대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시내는 관광 도시인 방콕의 여느 휴일 분위기와 달랐다. 음식점·기념품점 등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시위 지역 밖에서는 행인들도 뜸했다. 정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외부 출입을 삼가고 집안에 머물 것을 거듭 당부했기 때문이다.

◆“깜마 탁신”=주요 집결지인 랏차담넌 거리의 민주기념탑.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아피싯 물러나라”를 외치며 분위기를 달구고 있었다.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었지만 뙤약볕 속에서도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수만 명의 지지자는 “깜마 탁신(돌아와요, 탁신)”을 연호했다. 정오가 지나면서 랏차담넌 거리는 붉은 물결로 덮이기 시작했다.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의 회원 2만여 명은 “탁신 쏘쏘(탁신 힘내라)”를 외쳤다. 뉴욕에 사는 태국 교포 사라야 파니차야콘(70·여)은 “현 정부를 세운 쿠데타 세력은 선거에서 합법적으로 집권한 총리와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며 “탁신의 부정부패를 탓하기에 앞서 현 집권층은 탁신보다 유능할 수 있는지,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UDD 측은 15일 정오를 아피싯 총리의 사임과 의회해산·조기총선 일정 확정을 위한 최후 통첩 시한으로 못박았다. (UDD측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즉각 주요 간선도로 봉쇄에 나서겠다고 했다.

압박 강도도 높이고 있다. 나타웃 사쿠아 레드 셔츠 대변인은 “중부와 동부, 서부 지역의 시위대도 14일 오후까지 방콕으로 집결, 시위대 수가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회 해산 등 시위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위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폭력은 용인할 수 없어”=시위대가 급속도로 불어나자 태국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언제 폭도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태국 정부는 사태가 폭력적으로 돌변할 경우 긴급사태를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지 영자지 네이션은 “긴급사태가 선포되면 시위를 통제하는 주체가 경찰에서 군으로 바뀐다”고 전했다. 아피싯 총리도 “평화로운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겠지만 폭력은 용인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태국 정부는 일단 자제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피싯 총리는 “긴급사태 선포는 최대한 신중을 기할 것”이라며 “통제할 수 없는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부는 최대한 인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위대도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면 정부에 강경 진압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시위대 지휘부는 질서요원들을 거리 곳곳에 배치해 질서 유지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행사 진행요원들은 ‘마이카이쾀룰렝(비폭력)’이라고 쓴 완장을 차고 질서 유지에 분주했다. 이로 인해 랏차담넌 거리로 통하는 도로 곳곳에서 경찰과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지만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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