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미국 내달 환율조작국 발표 G2 모두 체면 살리는 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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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안화 환율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11일 미 수출입은행 주최 모임에서 “무역적자인 나라는 저축과 수출을 늘려야 하고, 흑자를 내는 나라는 소비와 내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며 “중국이 좀 더 시장친화적인 환율체계로 옮겨간다면 글로벌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위안화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 느낌은 좀 다르다.

우선 중국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라는 양회(兩會)가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국 내 중요한 정치행사가 한창 진행 중인 마당에 내정간섭적 소지가 있는 발언을 듣는다는 건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으로선 불쾌한 일이었을 게다. 또 미국으로선 다음 달 15일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발표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혔던 16, 17년 전과는 달리 중국은 이제 세계 무역시스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파장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묘한 시점에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직접 거명하며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 시절, 부시 행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전력이 있다.

중국은 강하게 되받아쳤다. 쑤닝(蘇寧) 인민은행 부행장이 오바마 발언 직후 “위안화 절상 문제를 정치쟁점화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직후 열린 내외신 회견에서 “위안화가 결코 평가절하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각국이 강제적인 방법으로 다른 나라의 환율을 절상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수출진흥각료회의(EPC)를 신설하면서까지 수출을 통한 일자리 확대에 나선 미국 입장에서 제일 타깃은 중국이 될 게 분명하고, 미국의 주도권 행사에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이 고분고분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접점은 있다. 지난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경제발전 모델을 전환하는 것을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처럼 중국 도 내수 주도 경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또 이를 위해선 위안화 절상을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위안화 절상의 길을 가면서도 서로 체면을 구기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 앞으로 한 달 미·중의 수싸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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