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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권투 만화 덕에 뜬 로트레아몽 백작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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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호 16면

윤제림은 ‘사랑을 놓치다’ ‘삼천리 자전거’ 등을 쓴 시인이다. 그를 몰라도 ‘재춘이 엄마’가 등장하는 모 기업의 광고는 기억이 날 것이다.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 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중략) 재춘아. 공부 잘해라!’하는 시 말이다. 제목이 ‘재춘이 엄마’다. 그 윤제림 시인이 신문의 신간평을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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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나는 그 난해한 시인의 난해한 시가 판매량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알아봤는데, 비슷한 시기에 만화가 허영만씨의 인기 있는 작품에 로트레아몽의 시가 인용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윤 시인이 말한 허영만씨의 만화는 ‘카멜레온의 시’다. 1986년에 나온 권투 만화다. 88년에는 같은 제목의 영화(노세한 감독)로 만들어졌다.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의 한국 남성이라면 ‘도전자 허리케인’을 기억할 것이다. 70년대의 어린이잡지 별책부록으로 나온 일본 만화다. 불우하게 자란 주인공의 필살기는 ‘크로스 카운터’인데, 상대가 주먹을 낼 때 슬쩍 피하며 맞받아쳐 승부를 가르는 기술이다. 링 위에서 맞이하는 주인공의 최후가 사뭇 비장미를 느끼게 했다. ‘카멜레온의 시’는 ‘도전자 허리케인’의 수준을 뛰어넘는 걸작이다.

‘어린 시절, 빨간 채찍에 맞아 잠에서 깨었을 때…’같은 시구로 가득한 ‘말도로르의 노래’는 어려운 시다. 문학을 공부한 대학생 시절, 로트레아몽의 시집을 붙들고 늘어진 건 순전히 오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은 정광호 시인의 표현처럼 ‘민속씨름판의 샅바싸움처럼 지루하게’ 흘러갔다. 지금도 이 시에 대해 독자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중요한 건 허영만 화백이 작품에 로트레아몽을 인용했고, 그래서 말도로르가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점이 있다. ‘도전자 허리케인’의 시대에 소년들은 챔피언을 꿈꿨다. 홍수환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아널드 테일러를 , 유제두가 일본에서 와지마 고이치를 때려 뉘던 시절이다. 그런데 ‘카멜레온의 시’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권투만화지만 허 화백이 하고픈 이야기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일까. 히트한 권투 만화의 덕(?)을 1800년대의 프랑스 시인이 봤으니 신기한 일이다.

‘카멜레온의 시’와 ‘말도로르의 노래’는 현대 사회의 문화가 갖는 속성을 보여준다. 다양한 형태의 매체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상을 만든다. 문화란 거대한 퍼즐이나 큐브 아니면 생명체다. 이런 점은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스포츠는 대중 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특히 스포츠는 시대를 규정하고 사회의 자의식을 강화한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쾌속세대’를 실감하고 ‘스포츠 선진국’임에 희열했다.

그래서 스포츠가 좋다. 그래서 석 달 뒤로 다가온 월드컵이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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